온갖 약들이 드러내고, 혹은 상자 속에 가려져 있는데 그중 몇 약들은 보관만 해오고 복용하지는 않고 있다. 그 약들 중 일부를 얼마 전 폐기했다. 바카라 에볼루션과 관련된 약들인데 처방받은 지 1년 이상 2년 가까이 되는 약들이고 처방약에는 유통기한이 명시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작년 여름의 혹서와 지난겨울의 건조함을 서랍 안에 갇힌 채 모두 겪은 약들이어서 어쩌면 효능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왜 이 약들을 그토록 오랫동안 보관해 오다가 이제야 버리기로 마음먹었을까.
바카라 에볼루션, 그놈은 그렇게 무서운 놈이다.
내가 바카라 에볼루션을 앓게 된 것은 정확한 기억을 더듬기도 어려운데 최초 발생 이후 꽤 오랫동안 내 증상이 바카라 에볼루션인지 알지 못했고 복수의 의사들이 단순한 근육 이상인줄로 오진했기 때문이다. 5년 이상의 시간 동안 여러 차례 간헐적인 바카라 에볼루션 발작이 있었으나 그때마다 엉뚱한 치료로 모면하고 2019년에야 마침내 대학병원에서 내 증상이 바카라 에볼루션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바카라 에볼루션이 얼마나 무섭고 아픈 병인지는 이미 많은 정보가 유통되고 있었지만, 그런 끔찍한 증상의 바카라 에볼루션은 진통제를 2, 3회 복용하는 것으로 간단히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리고 바카라 에볼루션의 원인 제공 노릇을 하고 있는 퓨린의 양을 떨어뜨리는 약도 어렵지 않게 처방받을 수 있어서 평소에 서리태 콩만 한 알약을 하루 한 알씩 복용하면 증상이 발현하는 것도 늦추거나 조절할 수 있었다. 내성의 부담 없이 약으로 통제가 가능한 병인 것이다.
그래서 바카라 에볼루션에 걸려서 앓은 기간 동안 괜찮았다는 거냐?
그렇지 않았다. 퓨린이 한번 오른쪽 발가락 사이에 자리를 잡고 나니 주기적으로 발이 붓고 통증 발작이 예고 없이 엄습했다. 발작의 간격이 점점 좁혀졌고 그때마다 진통제로 다스리면서 일상생활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복용하는 약이 늘어나는 것은 삶의 질도 떨어뜨리고 자존감도 망가뜨렸다. 길지 않은 며칠간의 여행이나 출장에도 바카라 에볼루션 발작을 대비한 약은 필수 준비물이 되었고 혹시 직장에서, 길에서, 전철 안에서 발작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가방에는 항상 약을 소지하고 있어야 마음이 놓였다. 같은 병원에 가면 똑같은 약을 다시 처방해 주지 않을 것 같아서 다른 병원으로 옮겨 다니며 충분한 양의 약을 확보할 때 이 모든 준비들이 결국 나의 방탕한 음주생활 때문이라는 자책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랬던 나의 바카라 에볼루션 증상이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두 달 후면 나는 금주 36개월을 맞게 되는데 그동안 한 방울의 알코올도 내 목구멍을 넘어간 적이 없으며, 한두 번 논알코올 맥주를 마셔볼까 생각해 본 적은 있었지만 논알코올 맥주에 담긴 0.2%의 알코올도 논알코올이라는 이름으로 술을 흉내 낸 음료에 내 단주 의지를 시험하고 싶지 않아서 역시 거절하고 참아냈다. 이렇게 술을 완전히 내 생활에서 몰아낸 것이 아마도 바카라 에볼루션 퇴치의 일등공신이었을 거라고 추측한다.
두 번째로 나의 바카라 에볼루션퇴치에 큰 기여를 한 것은 달리기를 비롯한 고강도 유산소 운동과 근력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일주일에 3회 이상 달렸고 두번 이상 근력운동을 하는데, 달리기는 매번 10km 이상, 가끔씩은 20km 이상 달리고 여러 차례 마라톤 대회에도 참가했다. 달리기를 하기 이전에도 나는 일상생활 속에서 운동을 꾸준히 해왔지만 대개 근력 운동과 등산과 트레킹 위주의 유산소 운동이었는데 달리기를 시작 한 이후로 운동 패턴이 완전히 바뀌었다. 유산소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이제 적지 않은 나이라 근육운동을 열심히 해야 해서 운동 스케줄을 손 볼 필요가 있다. 중독성이 강한 달리기가 몸도 단련시키고 마음도 바로잡게 하는 효과가 있어서 나의 금주생활에도 보이지 않는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식습관이나 생활패턴은 바뀐 것이 없다. 나는 기존의 방식대로 이른 시간에 기상하고 곧바로 빵, 우유, 시리얼, 누룽지, 커피 등을 번갈아 먹는 아침 식사를 하고 점심, 저녁도 충분히 배부르게 먹고 달달한 간식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내표 집밥이야 한식의 전형이어서 된장찌개와 각종 제철 나물들, 어패류, 해조류와 콩, 두부, 계란 등 건강식 위주로 구성된다. 식사 대신 혹은 간식으로 먹성 좋은 아들들 덕에 치즈를 추가로 넣은 로제 떡볶이와 유혹적인 냄새의 치킨들,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도 배불리 먹는다. 내가 먹는 음식들 중 상당수는 퓨린 함유량이 높아서 바카라 에볼루션 환자가 삼가야 할 목록에 포함된 음식들이 있지만 개의치 않고 맛있게 먹는다. 술을 마시지 않고 충분한 운동량을 하는 사람이라면 음식으로 체내에 들어온 퓨린은 땀으로 다 빠져나간다.
작년 초 위, 대장 내시경과 복부 초음파 등의 검사가 포함된 건강 검진을 받고 결과를 받으러 의사 앞에 앉았다. 의사와의 상담은 짧게 끝났다. 검진 결과 이상이 있는 정황은 나타나지 않았고 문진으로 확인한 나의 금주, 금연, 주 5회 이상의 고강도 바카라 에볼루션 이력으로 의사는 나에게 해줄 말이 없었던 것이다.
50대 후반의 중년 남자가 술 마시지 않고 담배를 피우지 않으며 충분한 바카라 에볼루션량을 갖고 있다면 의사 앞에서 당당할 수 있다. 혈압, 콜레스테롤, 혈당이 우수한 수치로 나오고 정상 수치의 체지방량으로 군더더기 없는 복부와 적당한 근육량을 보이는 중년은 의외로 그리 많지 않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건강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쉽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시작은 말할 수 없이 어렵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루틴이 되어버려서 해야만 하는 바카라 에볼루션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근질근질 좀이 쑤시는 상태가 되었고 옆에서 부어라 마셔라 술을 마셔대도 나는 맛있고 따뜻한 안주를 두둑이 챙겨 먹고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올 뿐이다.
자력으로 떨쳐버린 바카라 에볼루션.
극심한 통증으로 악명이 높은 병을 내 의지로, 바카라 에볼루션과 금주만으로 이겨냈다. 병을 하나 넘어선 것이지만 그 성취감은 크고 자존감도 높아진다. 가족과 친구, 동료들 등 주변의 시선도 달라진다. 삶의 질이 우수해지면서 전반적인 생활태도가 건전해진다. 어려운 병이지만 약으로가 아니라 정신력으로 다스려질 수 있다는 사례를 몸소 만들어 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