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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주익 매직슬롯 꽁 머니와 프러포즈

Would you merry me?

이제 바르셀로나 해변으로 가야 했다.

바르셀로네타에서 곤돌라를 타고 짧게나마 지중해 위를 거쳐 몬주익성에 내린다. 오래된 옛 성의 내부를 관람하고 나서 언덕을 걸어 내려오면 슬롯 꽁 머니쇼가 펼쳐지는 몬주익광장에 다다를 수 있다. 조금 기다리면 환상의 슬롯 꽁 머니쇼가 시작될 것이고, 좋은 자리에 앉아서 오색찬란한 매직슬롯 꽁 머니쇼를 보는 것, 이것이 내가 계획한 그날 오후의 여정이었다.


항구에는 여러 가지 유흥 오락시설이 있었는데 이미 파장인지 이용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바닷가도 한적하다. 슬롯 꽁 머니 타는 곳으로 갈수록 인적은 더 뜸해졌다. 뭐지, 이 싸한 느낌은......


뛰다시피 걷다가 숨이 턱에 닿을 즈음 슬롯 꽁 머니 매표소에 도착했으나 방금 마감을 끝낸 직원은 책상을 정리하는 중이다. 급하게 표를 한 장 달라고 하자, 오늘의 마지막 슬롯 꽁 머니는 이미 출발했다며 손가락으로 '6시 마지막' 팻말을 가리킨다. 6시에서 5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각이었다.


자그마한 슬롯 꽁 머니가 저만치 줄에 매달려 가고 있다. 불과 한 발의 차이로 놓친 나의 병맛 표정을 들키고 싶지 않아 재빠르게 몸을 돌린다. 살면서 놓친 것이 어디 슬롯 꽁 머니 밖에 없을까!

'바이 슬롯 꽁 머니, 바이~'

곤돌라를 타고 슬롯 꽁 머니 캐슬에 내리려던 나의 아름다운 계획도 바이......

할 수 없다. 곤돌라만큼 운치는 없지만 땅 속 전철을 타고 그냥 몬주익 슬롯 꽁 머니로 가는 수밖에.


몬주익광장 지하철역에 내려 언덕길을 올라간다. 주변을 천천히 걸으며 둘러보는 사이 어둠이 내려앉았다. 사람들이 슬롯 꽁 머니 근처로 모여들었고, 나도 그들 사이에 섞여 계단 한 춤에 자리 잡고 앉았다.


남성 아마추어 힙합댄서 그룹의 요란한 버스킹이 끝나고, 드디어 슬롯 꽁 머니 쇼가 시작되었다.


노랑, 분홍, 파랑, 보라의 화려한 색을 품은 슬롯 꽁 머니가하늘 높이 솟구친다. 사람들의 환호성도 물줄기를 타고 솟구쳐 올랐다. 눈앞의 황홀경에 취해 슬롯 꽁 머니에 걸린 듯환상의 나라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났다.아~ 행복하다!

아름다운물기둥이 스러졌다 올라오고 또 스러졌다 올라오는 몽환적인 시간, 진흙탕 같은 삶의 주인공은 잠시 잊기로 하자.



누군가 'Would you marry me?' 큰 소리로 말했고, 곧바로 '와~' 함성이 터졌다. 여자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마술에서 깨어나듯, 남편이 내게 슬롯 꽁 머니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그때는 결혼 전 슬롯 꽁 머니 의식이 지금처럼 당연하지 않았고, 나 또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결혼을 전제로 만나던 그때, 나는 도대체 뭣이 중했을까? 결정적인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남편의 비겁함은 정작 놓쳤으면서.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결혼을 할 것인가?

다음 생을 기다리며 몇 겁을 도는 사이 혹여라도 잊을까 봐 내 영혼에 새겨둔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결혼하지 않겠다.


이생에 이미 결혼한 나는 어쩔 것인가?

살아오는 동안 내가 놓친 것들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행복한 순간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나의 일부를 폐쇄하고 얻은 모두의 행복이었고, 그 속에 내가 있었을 뿐이다. 나 자신을 외면하는 것이 점점 힘겨웠지만, 달디 단 열매처럼 주어질 무엇인가를 확신하며 쓴 시간을 지나왔다.남편은 최소한 나를 아낀다는 마음을 내게 보였어야 했다.


이제와 쭉정이 열매라도 어설프게 맺을 것인가, 과감하게 털어낼 것인가. 어느 쪽이든 더 이상 나를 놓칠 수는 없다.




쇼가 길어지면서 매직슬롯 꽁 머니의 황홀함은 시들해졌고, 사람들도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다. 쇼는 이어졌지만 어두운 밤 길이 두려운 나는 환상적인 물줄기를 뒤로 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컴컴한 언덕길을 걸어 내려왔다.


역 주변거리의 모습은마치 라스베이거스의 찬란한 밤과 삭막한 낮의 차이만큼이나 확연하게 달라진다. 화려한 매직슬롯 꽁 머니도 현실이고, 인적 없는 어두운 밤거리도 내가 속한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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