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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6 파라오 슬롯 Expert

파라오 슬롯 말하기, 쓰기 시험을 본 지 일주일이 지났다. 이 즈음이면 점수가 나왔겠거니 생각하며 파라오 슬롯 시험을 주관하는 YBM 홈페이지에 들어가 점수를 확인해 보았다. 200점 만점에 말하기와 쓰기 점수는 각각 180점, 200점이었다. 3주 전에 봤던 듣기, 읽기는 990점 만점에 960점을 받았다.


공부를 제일 적게 한 쓰기 시험에서 점수를 가장 높게 받아 의외였다. 하지만 파라오 슬롯 말하기는 순발력이 중요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쓰기와는 다르게 수정을 할 수 없다는 큰 제약이 있다. 말하기는 시간 내에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두 번째 기회는 없을뿐더러, 문법에 오류가 있다고 해도 수정할 기회도 없다.


파라오 슬롯 스피킹은 짧은 시간에 답변을 해야 하기 때문에 순발력이 무척 중요하다. 또 내가 평소에 생각해 본 적 없거나 관심이 없는 주제에 대해서 물으면 머리가 하얘지기 때문에 제대로 답변을 하기가 쉽지 않다. 라이팅은 답변 작성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에 일단 말이 되든 되지 않던 뭐라도 적을 수 있지만, 스피킹은 그러지 않았다.


YBM에서 출시한 파라오 슬롯 스피킹 모의고사를 진행할 수 있는 앱이 있다. 무료인 데다가 모의고사도 12회분으로 넉넉하고, 또 나의 답변을 녹음해서 나중에 다시 들어볼 수 있었다. 책으로 먼저 문제 유형과 답변 스킬을 익히고, 이 앱을 활용해서 실전 감각을 익혔다. 모의고사를 풀어보던 중 “유명한 음악가가 실력이 좋은 음악가인가?”라는 물음이 등장했다. 우선 생각해 본 적 없는 문제에 당황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답변은 별로 좋은 답변이 아니라는 생각만 들뿐, 그 밖에 다른 답변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 순간 내가 생각해 낸 답변은 이러했다. “유명하다는 속성과 실력이 좋다는 속성은 서로 다른 정의를 가지고 있다. 두 정의에 교집합이 존재할 수는 있지만, 둘 중 하나의 참이 다른 하나의 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고등학교 1학년 시간에 배운 명제와 집합을 이용한 답변 말고는 다른 답변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비즈니스 영어 실력을 측정하는 파라오 슬롯 시험에서 어째서 이런 생뚱맞은 문제가 출제되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상황이 이러하니 파라오 슬롯 스피킹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는 문제 운도 중요했다. 그렇기에 파라오 슬롯 스피킹 시험에 여러 번 응시해서 잘 나온 점수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나는 남자친구와 대화하다가 내 자격지심에 충동적으로 파라오 슬롯 시험 4종 세트를 모두 신청해 버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똑같은 시험을 비싼 돈을 내고 또 보고 싶지는 않았다.


파라오 슬롯 시험 4종 세트 응시료로 한 번에 대략 16만 원에 교재비까지 총 21만 원의돈을 써버리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감정이 앞서 큰돈을 지출하고 나자 이성이 돌아왔다. 그야말로 셀프 금융치료 해버린 것이다. 나의 충동적인 지출이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점수를 잘 받아야 했다. 앞서 모의고사에서 등장했던 그런 당혹스러운 문제가 등장하면 어쩌지 걱정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실전에서는 내가 잘 답변할 수 있는 문제들이 출제되었다. 덕분에 파라오 슬롯 시험에 또 응시하지는 않아도 될 듯하다.


하지만 나의 도전의식을 자극하는 일이 또 생겨났다. 이번에는 YBM에서 발급하는 그랜드슬래머 인증서였다. 파라오 슬롯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얻은 사람들에게 YBM은 Master, Expert, Advanced 이렇게 세 종류의 인증서를 발급해 준다. Master는 파라오 슬롯 시험 4종에서 모두 만점을 받은 사람에게 수여하고, 나는 Expert 등급을 부여받았다.


이왕 쓰기 파라오 슬롯서 만점을 받았으니, 듣기와 읽기, 말하기에서도 만점을 받아볼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하지만 YBM은 나의 애인처럼 나의 자존심을 긁지 않았기에 내가 이성을 잃을 수준은 아니었다. 게다가 충동적으로 21만 원을 긁은 뒤로 정신을 차린 경험이 불과 한 달 전의 일이다. 감정이 앞서 생겨난 출혈을 뒷수습한 교훈이 아직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이러나저러나 내게 파라오 슬롯 점수가 남았다는 것은 다행이다. 내 자격지심에 스스로 긁혀 애인과 말다툼을 하지는 했지만, 또 감정이 앞서 큰 금액을 충동적으로 지출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되었던 나에게 남는 게 있다는 것은 참 다행인 일이다. 싸움 뒤에 상한 감정만 남고, 돈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결과이지 않은가! 라며 정신승리를 해본다.


한편으로는 이게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인가 싶기도 하다. 자격지심이 긁혀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그렇게 벌인 일을 뒷수습하며 살아가는 것 말이다. 그래도 이러나저러나 무언가 남기며 살아가니 다행이다. 어차피 천성은 바뀌지 않으니 오히려 뻔뻔하게 내가 생산성을 발휘하는 기작을 잘 이용하며 살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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