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틈이 벌어진 녹이 슨 슬레이트 지붕으로 시끄럽게 빗방울들이 떨어졌다.
어른들은 그걸 슬롯 머신 일러스트라고 했다. 나는 그때 국민학교를 다녔다. 동생은 유치원생이었고.
아빠가 슬롯 머신 일러스트를 때린 날. 슬롯 머신 일러스트는 집을 나갔다. 하늘에 구멍이 뻥 뚫렸나 싶을 정도로 내리던 비가 그친 건 그쯤이었다.
"너네도 너네 슬롯 머신 일러스트 따라가." 슬롯 머신 일러스트를 찾으러 간 냇가 앞이었다. 물이 불어 황토색으로 변한 냇가에는 부러진 나무며 공장 쓰레기들이 떠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혹시 몰라 조막만 한 내 동생 손을 꽉 쥐었다. 그때였다. 할머니가 내 등을 민건. 밀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얼마나 애를 썼냐면 내가 신고 있던 스레빠에 발가락 10개가 다 삐져나와있었으니까.
나랑 동생을 버리고 간 엄마. 물이 불어난 냇가에서 내 등을 민 할머니. 엄마를 때린 아빠. 그쯤. 나도 사람한테도 슬롯 머신 일러스트 있다는 걸 알았다. 눈물이 하루종일 나왔으니까. 옷소매로 닦고 티셔츠 밑단으로 닦아도 눈물이란 게 계속해서 나왔으니까.
머리가 좀 크고서는 그러니까 할머니보다 키가 몇 뼘이나 더 크고 나서는 그때 일은 말하지 않았다. 먹기 싫은 알약을 삼키듯 그냥 꿀꺽하고말하고 싶던말을 삼켰다.
할머니가 치매로 돌아가신 날. 내가 했던 말들보다 하지 않았던 말들에 대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말이란 게 생각이란 게 뱉고 나면 아니 속도가 붙고 나면 멈출 수도 없게 서로에게 생채기를 남겨. 분노와 가족에 대한 실망이 슬롯 머신 일러스트 불어난 냇물처럼 쏟아지곤 했었다.감정이넘실거린다. 하고 싶은말. 가슴에 맺힌 말들이 하나둘씩떠내려 왔다.
"내가 그때 할머니 정말 미워했는데 크면 복수한다고 맘을 먹었거든. 근데 할머니복수니 원망이니. 아픈 마음들을 품지 않기로 했어요. 곰팡이처럼 미움도 번지더라고.
할머니 가난해서 좋았던 건. 할머니 말고. 슬롯 머신 일러스트 말고. 그리고 우리 아빠 말고 가난만 원망하면 되니까. 나는 그게 참 좋았어요. 어른이 되고 알았어요.다들 우리는 우리만의 슬롯 머신 일러스트을 지나고 있었다는 걸. 할머니도. 엄마도 아빠도 각자 방식으로 비를 맞고 있었던 거예요. 나도 그랬고. 아마 동생도 그랬을 거예요. 근데 장마가 아무리 길어도 끝은 있잖아요. 비는 그치고 땅은 마르니까.그리고 무지개도 뜨잖아요. 비가 그치면 무지개가 꼭 뜨니까. 그때 일을 곱씹으며 너무 아프게 살지 않기로 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