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5년 만에 간 한국이었다. 캐나다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리 딸은 캐나다 동네에는 없는 휘황찬란한 키즈카페에 넋이 나갔다. 캐나다 있을 때 윗집 언니에게 물려받은 옷을 입고서 말이다. 낡기도 했고 작아지기도 한 그 옷을 입고 말이다.
너무 신난 나머지. 너무 흥분한 나머지 방방거리고 뛰다가 딸 바지에 바카라 게임이 났다. 한 개도 아니고 두 개. 새끼손톱만 했던 바카라 게임이 점점 커진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우리 딸은 바카라 게임에 손가락을 넣어 바카라 게임을 더 크게 만들고 있었다.
"엄마. 쟤 좀봐. 빨간 바지 입은애. 쟤 바지에 바카라 게임 났어."
6살은 되었을까? 아님 7살? 폴로 티셔츠를 입고 반짝거리는 에나멜 구두를 신은 소년이 말한다. 자랑스러운 우리 딸은 보란 듯이 바카라 게임에 손가락을 넣어 빙빙 돌린다. 헤헤 해맑게 웃으면서.
"엄마. 이 바지는 엠마 언니가 준거잖아. 그래서 나는 이바지 좋아해. 이거 입으면 언니 생각나서. 바카라 게임 나도 괜찮아. 그렇지? 꿰매면 되잖아." 몇 번 바카라 게임이 난 딸 바지를 꿰매주었다. 그걸 어린 딸이 기억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래, 바카라 게임 나도 괜찮아. 꿰매면 되잖아."
나는 딸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아직도 아기 같은데. "맞아. 바카라 게임 나도 괜찮아. 엄마가 또 꿰매주면 되니까." 낡았지만 딸에게는 소중한 바지. 딸이 좋아하는 윗집 언니가 준 소중한 바지. 바카라 게임 난 빨간 바지는 꼬마에게 단순한 옷은 아니었다. 꼬마에게는 그 옷이 언니와의 추억, 그리고 추억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었다.
한국에서는 바카라 게임 난 옷을 입는 것이 창피한 일로 여겨질 수도 있다는 걸. 세련된 옷을 입고 반짝이는 구두를 신은 아이가 바카라 게임 난 빨간 바지를 지적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처럼 보였다. 그런데도 우리 딸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바카라 게임 난 바지가 좋다고 했다.
꼬마에게 배운다. 세상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야말로 더 중요한 일이라는 걸.
어쩌면 살아가는 일은딸아이의 바카라 게임 난 빨간 바지 같다는 생각도 했다. 여기저기 부족한 부분도 있고 결점도 있다.하지만 그 모든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또는 살아낸 흔적이고, 사랑하고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남들의 시선과 기준에 휘둘리지 말고, 내 삶의 바카라 게임을 꿰매며 나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면 된다. 결국, 삶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바카라 게임을 꿰매며 그 과정을 사랑했는가로 빛나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