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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조카 같은 파라오 슬롯가 "이모~"하며 내 앞에 섰다. "응?" 하며 바라보니 "나 이모한테 미션이 있어." 한다. "무슨 미션?" 하니 더럭 나를 꼭 껴안아준다. 나는 기분 좋게 팔을 둘러 같이 안아주었다.


아이는 "언니가 호주에서 자기 대신 이모 안아주라고 미션 줬어." 한다. 그러면서 언니 대신이라며 다시 나를 안아주는 거다. 그 순간, 갑자기 마음속의 울타리가 삐걱거리며 봇물이 터지려 넘실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파라오 슬롯 다잡을 순간도 없이 아이는 "그리고 이건 내 거." 하며 다시 안아준다.


난 왈칵 눈물이 터졌고 그리움을 가두었던 파라오 슬롯이 빗장이 열려버렸다. 터져 나온 눈물은 계속 흘렀다. 다른 이들이 바라보고 있어 성급히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눈물을 닦았으나 파라오 슬롯속엔 이미 그리움이 줄줄 새고 있었다. 예전 소소하게 음식 시켜 먹고 산책하고 별거 없이 소파에 옹기종기 모여 수다 떨던 모든 것들이 기억났다.


징그럽게도 싸우고 화해하고, 쓰러지게 웃기고, 끊임없이 움직이던 우리들, 이걸 나는 기억하고 싶지 않았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하루를 잘 지낸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버튼 하나를 눌러 파라오 슬롯을 가둬둔 방의 문을 열어 버린 것이다.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리움의 잔상은 나를 눌렀고 나도 모르게 "아, 아이들 보고 싶어."하고 입으로 토해냈다. 아이들이 가고 처음으로 입 밖으로 꺼냈다. 이 말의 파장은 남편님의 파라오 슬롯에도 울림을 주어 다음날 "당신 때문에 나도 괜히 아이들이 보고 싶네." 하는 거다. 우리 부부는 암묵적으로 이 말을 피해왔었나 보다.


며칠이 지난 지금도 열렸던 문이 꽉 닫히지 않는다. 실실 틈새 사이로 비집고 나오려 해서 두 손을 힘주어 잡아 파라오 슬롯 가둔다. 그러면서 나를 위로한다. '크리스마스라 그런 거야. 지나면 좀 나아질 거야.'


그리움을 참는 건 눈에서 눈물이, 파라오 슬롯에선 피눈물이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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