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언제일까? 어쩌면, 아마도, 바로, 결국에는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일지도 모르겠다. 세상과 눈이 마주치는 그 순간. 바로 그 순간으로 다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을 다시 살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되돌아갈 용기가 과연 있을까? 이 세상과 온전히 마주하여 맞닥뜨려 다시 살아갈 용기가 생길까? 하다못해 용기일랑 접어 두고 내 온 생을 다 합쳐 내가 가장 잘못한 지점, 내 실수를 만회하고 싶은 순간, 내 선택을 바꾸어야 했던 그 슬롯 머신으로 저벅저벅 다시 걸어 들어가 그 시련을 온전히 다 겪을 자신이 있을지 자문해 본다.
저자 카를로 로벨리는 제2의 스티븐 호킹이라 평가받는 세계적인 물리학자이다. 양자이론과 중력이론을 결합한 '루프양자중력'이라는 개념으로 블랙홀을 새롭게 규명했다.
나는 이 책을 다 읽은 지 수개월이 되어서야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슬롯 머신을 물리학적으로 설명하려 많이 애를 쓴 부분도 역력했지만, 무엇보다 지나온 슬롯 머신은 사건의 연속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지점으로 다시 되돌아가면 된다는 이론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것이 정녕 가능할지. 또한 나는 그 고통의 사건으로 되돌아갈 용기가 손톱만큼이라도 남아 있는지도 가늠해 보았다.
어느 깊은 밤 여기저기서 슬롯 머신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서로 비슷한 처지의 슬롯 머신로 어울려져 옹기종기 모여 앉기 시작했다. 이곳은 슬롯 머신을 거슬려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는 입구가 있는 산 중턱이었다. 이미 사람들은 이곳에 오기 위해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신발의 바닥은 다 닳아 없어질 지경이고 옷은 구더기처럼 여기저기 볼품없이 해졌고, 무엇보다 그들의 표정은 어두운 그늘로 웃음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모두들 나의 과거만큼이나 더한 고통은 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앉아 있었다.
"이곳은 들어가는 순서가 따로 있나요? 제가 좀 급해서요." "몰라요. 저도 지금 막 도착했어요." "저 안에 들어가면 언제 다시 나올 수 있나요?" "여기 있는 사람 아무도 들어가 보지 않아서 몰라요."
다시 주변은 조용해졌고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는 문 입구를 지키고 접수를 받는 사람인지 아닌지 모를 어느 사람이 슬롯 머신을 한 명씩 불러 얘기를 들어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입구를 통과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더 비통한 얼굴을 한 채 슬롯 머신은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모두들 이 슬롯 머신 절대자 앞에서 나는 이겨내는 사람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나 또한 저 산중턱에는어떻게해서든당도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통과가 되었을까. 저 문을 넘어갈 정도의 마음가짐이 되어 있었을지 의문이다. 차라리 그 용기로 앞으로 남은 슬롯 머신을 열심히 살아 보는 것이 어쩌면 더 현명한 일일 수도 있다.
더구나 시간을 거스르는 일을 슬롯 머신 절대자가 허락해 줄지 만무하다. 그러므로 과거의 힘들었던 일일랑 슬롯 머신 절대자에게 맡겨 버리고 흐르는 시간 속에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것이 옳다.
그렇지만 슬롯 머신 잊히지 않는 내 잘못된 선택을 꼭 바로잡고 싶은마음은간절하다. 슬롯 머신 문지기에게 다시 한번 읍소라도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