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좋은 의사 그리고 좋은 슬롯 꽁 머니

의사보다 슬롯 꽁 머니가 더 중요하다

아무런 특징 없는 50대 여자였다. 올해가 가기 전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온 슬롯 꽁 머니였다. 강점숙 씨(가명)는 술, 담배도 안 하고, 적당히 운동도 하기에 별 달리 할 말이 없는 슬롯 꽁 머니였다. 슬롯 꽁 머니가 올 때마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나는 슬롯 꽁 머니의 이전 결과들을 살펴본다. 근무하는 곳이 종합병원이기에 다양한 과에서 진료를 본 기록이 있어, 슬롯 꽁 머니를 좀 더 상세히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강점숙 씨(가명)는 2년 전, 건강검진을 한 적이 있었다.


‘뭐 특별한 것 없겠지.’


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결과를 확인한 나는 몸에 전율이 일었다. 간수치가 정상보다 높은 빨간색이었기 때문이다.


AST:118(정상은 40 이하)

ALT:198(정상은 35 이하)

rGTP:1981(정상은 여자 35 이하)

공복 혈당:135(126이상 당뇨)


술도 안 먹고, 체중도 정상인 50대 여자가 간 수치가 높으면 1. 약 2. A, B, C형 간염 3. 간 및 담도, 췌장쪽 이상 등 이었다.

슬롯 꽁 머니로서는 전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무조건 정밀 검사를 해야 한다. 설령 그것이 2년 전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슬롯 꽁 머니분, 2년 전에 검사 했을 때 이상 있다는 말 없던가요?”

“이상 있다고는 하는데, 아프지 않아서 따로 병원을 안 갔어요.”

“최근 살 빠지거나, 소화가 안 되거나, 이런 증상 없어요?”

“괜찮아요.”

“검사 수치가 정상의 4배, 심지어 60배 가까이 높았어요. 무조건 정밀 검사 하셔야 합니다.”


“지금 바빠서요. 제가 알아서 할께요.”


이렇게 말하는 슬롯 꽁 머니의 다수가 대부분 병원에 다시 안 간다. 나는 다시 한 번 말했다.


“슬롯 꽁 머니분이 제 가족이라면, 전 어떻게 해서든 추가 혈액 검사와 함께 복부 초음파나 CT를 했을 겁니다. 혈액 검사가 정상보다 몇 배나 높다니까요. 이건 정상이 아니에요. 무조건 검사 하셔야 합니다.”


“알아서 제가 병원에 갈께요.”


정숙 씨는 특별한 증상이 없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간은 침묵의 장기다.

슬롯 꽁 머니

“슬롯 꽁 머니분, 간은 한 개인데 아들이 아빠한테 이식하죠?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요? 아들이 아빠에게 40%를 줍니다. 40%만 있어도 멀쩡한 거죠. 반대로 말하면, 60%가 망가져도 전혀 증상이 없어요. 증상이 나타나면 늦어요. 그러니까 지금 당장 정밀 검사를 하셔야 해요.”


슬롯 꽁 머니분은 진지하고 걱정스런 나와는 반대로 짜증이 난 것 같았다. 사람들은 흔히 나쁜 소식을 접할 때, 아니라고 믿고 싶고, 나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에게 화를 낸다. 부정과 분노다.


제가 알아서 병원에 갈께요.

슬롯 꽁 머니가 다녀간 날, 건강검진 결과를 확인했다. 간담도 수치는 더 상승했고, 공복혈당도 올랐다. 간, 담도, 췌장 질환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나는 전화를 했지만, 슬롯 꽁 머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결국 검사 결과가 2년 전에 비해 더 나빠졌으며, 꼭 금식으로 내원하여 정밀 검사를 받으라고 문자를 남겼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의사로 일 년에 만 명이 넘는 슬롯 꽁 머니를 만난다.


“선생님, 제가 호르몬(탈모) 치료를 받아야할까요?”


이런 경우에 있어서는 의사인 나는 치료의 효과와 부작용을 설명하고, 선택은 슬롯 꽁 머니가 하도록 한다. 슬롯 꽁 머니라기보다는 고객에 가깝고, 나는 의사라기보다 조언자로 수평적 관계다. 하지만 심각한 외상이나 질환의 경우는 다르다. 슬롯 꽁 머니나 보호자는 일생에 처음 맞닥뜨리는 상황에서 잘 모를 뿐 아니라 당황스럽기에 올바른 선택을 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럴 때는 의사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선택에 대해 슬롯 꽁 머니와 보호자를 설득하여 동의를 구해야지, 슬롯 꽁 머니에게 선택권을 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의사로서 진지하게 설득을 하면, 슬롯 꽁 머니와 보호자는 대부분 따라온다. 하지만 아무리 설득을 해도 설득이 안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 달만 해도, 정상이 12인 헤모글로빈 수치가 6으로 심각한 빈혈인데도 빈혈 검사는커녕 오히려 다이어트약을 먹는 40대 슬롯 꽁 머니가 왔다. 나는 빈혈에 대한 정밀 검사와 함께 다이어트약을 중단해야 함을 설명하고 설득했지만 둘 다 실패했다. 마음 같아서는 강제로 입원을 시켜 빈혈 검사를 하고 다이어트약을 끊도록 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의사인 나에게는 그런 권한이 없다. (실제로 나는 슬롯 꽁 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루는 50대 정상훈 씨(가명)가 1년 전부터 금연을 한다고 했다. 50대에 금연을 하는 계기는 대부분 친한 누군가가 암이나 뇌혈관 질환에 걸리거나, 자신이 걸리는 경우다. 이에 금연 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았더니, 선생님께서 1년 전에 진지하게 금연하라고 하셔서 했다고 하셨다.


사실 난 정상훈 씨에게 금연을 권고한 것이 기억나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 모두 금연하라고 하기 때문이다. 슬롯 꽁 머니는 금연을 통해 건강해졌고, 나는 금연한 슬롯 꽁 머니 덕분에 의사로서 자부심을 느꼈다.


슬롯 꽁 머니 의사는 없다.
좋은 슬롯 꽁 머니만 있을 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