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사이트 무모한 도박과 앞당겨진 파국
아르덴 대공세 1944 - 앤터니 비버(글항아리)●●●●●●◐○○○


"각하! 슬롯사이트 현실을 직시하셔야 합니다. 뫼즈강으로 갈 수 없습니다."
만토이펠의 전화를 받은 요들은 용기를 냈다. 그리고 치겐베르크에 있는 아들러호르스트에서 움직이지 않으려는 슬롯사이트에게 간언했다. "각하! 이제는 현실을 직시하셔야 합니다. 뫼즈강으로 갈 수 없습니다." 괴링 제국원수도 같은 날 저녁 치겐베르크에 도착해서 단언했다. "이 전쟁은 졌습니다." 그는 평화협상을 시작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슬롯사이트는 분노에 몸을 떨면서 자신의 허락 없이는 절대 그런 협상을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만약 내 명령을 어기면 총살시켜버리겠어!" 슬롯사이트는 더 이상 안트베르펜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 대신 바스토뉴를 점령하는 데 모든 힘을 쏟았다. 1942년 9월 카프카스에서 승리를 놓치고 나서 스탈린그라드에 전력을 다했던 것처럼, 슬롯사이트는 승리의 상징으로 바스토뉴가 필요했다.
- p. 365. 12월 26일 화요일.
.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슬롯사이트.
. 1944년 7월. 코브라 슬롯사이트.
. 1944년 8월. 팔레즈 포위전.
. 1944년 9월. 마켓가든 슬롯사이트. 그리고 12월.
. 1944년 6월 6일에 15만의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한 이후, 몇 차례의 대규모 전투를 거치며 연합군은 성공적으로 내륙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독일군은 방어선을 형성해 노르망디에 연합군을 묶어두려 했지만 연합군은 기갑부대를 주축으로 한 패튼의 코브라 작전으로 이를 돌파해냈고, 노르망디의 교두보를 탈환하겠다는 독일의 슬롯사이트 작전을 상대로 팔레즈에서 독일군을 포위해 대승을 거둔다. 그렇잖아도 한정된 병력으로 양대전선(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까지 감안하면 3개 전선)을 운용해야 하는 독일군은 여기서 사상자 5만, 포로 20만이라는 막대한 피해를 입는다. 연합군 정보부가 서부전선의 독일군은 사실상 괴멸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을 정도의 대참패였다.
연합군의 승리는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7월에 있었던 슬롯사이트 암살 시도는 1918년보다 더 분명하게 나치가 붕괴되기 시작하는 조짐으로 여겨졌지만, 실제로는 암살이 실패하면서 나치 지배 체제가 더욱 강화되었다. 연합군 최고 사령부의 G-2 정보부는 "8월의 전투로 서부의 독일군은 사실상 괴멸되었다"는 성급한 전망을 내렸다. 런던의 전시 내각도 크리스마스 이전에 전쟁을 끝낼 수 있으리라 판단하고 12월 31일을 종전 목표일로 정해놓고 있었다. 처칠 한 사람만 독일이 끝까지 저항할 것을 우려했다. 독일과의 종전을 예상한 워싱턴은, 여전히 일본군과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던 태평양으로 점차 눈을 돌렸지만 미국 전시생산국은 벌써부터 포탄 생산을 포함한 군수 계약들을 취소하기 시작했다.
- p. 18. 슬롯사이트의 열기.
. 비록 너무 신을 낸 영국군이 네덜란드에 대규모 공수부대를 투입하는 무리수를 두다 참패한 마켓가든의 참사가 있었고 그 덕에 한숨 돌린 슬롯사이트군이 네덜란드를 지켜내며 방어선을 다시 형성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방어선을 형성했을 뿐 이제 남은 전력으로 서부전선에서 공세를 펼치기엔 역부족이었다. 슬롯사이트군도, 연합군도 모두 연합군이 충분한 시간을 들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기 전까지 서부전선은 이대로 유지될 거라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게 타당했다. 낙방한 미대 지망생(....)을 제외하고는 누구 하나 이를 의심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 낙방생이 누가 반대하던 간에 우격다짐으로 동부전선의 슬롯사이트군을 끌어올 수 있는 결정권이 있다는 것이었다.
슬롯사이트는 두 개의 기갑군으로 안트베르펜까지 밀고 들어갈 수만 있다면 서부의 연합군을 분리시켜서 캐나다를 전쟁에서 발을 빼게 하고, 영국군까지도 "제2의 됭케르크"로 밀어넣어 루르 지방의 군수산업을 위협하려는 연합군의 계획이 좌절되리라 믿었다.
- p. 105. 슬롯사이트의 준비.
. 앤터니 비버는 (그의 책이 으레 그렇듯) 둔기로 쓰기 딱 좋은 묵직한 이책에서2차세계대전 후반부에 간신히 버티고 있던 양대전선이 슬롯사이트 한탕주의와 독단적 작전으로 인해 붕괴되고 전쟁 전체가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사실 이 아르덴 대공세 뿐 아니라, 2차대전 이전부터도 슬롯사이트 작전이라는 건 그게 전략이든 정략이든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었다. 전간기 독일의 수많은 선동가와 폭도 중 하나로 경력을 시작했던 히틀러는 항상 도박수를 통해 역전을 이뤄왔다. 나치당으로 정권을 잡은 것부터 주데텐란트와 체코 점령, 그리고 전격전을 통한 프랑스 점령에 이르기까지.
. 그렇기에 모두가 그토록 우려하며 만류하던 양면전쟁이 현실로 닥쳐오고 이제는 도저히 전력차가 극복되지 않는 상황에서 슬롯사이트는 동부전선의 병력을 빼오는 도박수를 통해 '어떻게든' 안트베르펜까지만 밀고 들어간다면 서부전선의 연합군은 전의를 상실해 발을 뺄 것이며, 그렇게 되면 전 병력을 몰아 소련과 마지막 승부를 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 그의 머릿속에는 그동안의 도박으로 인한 수많은 참패는 남아있지 않았고, 계속된 도박의 패배가 그를 여기까지 내몰았다는 사실도 떠오르지 않았다. 심지어 그 도박을 위해서는 그나마 힘들게 버티고 있는 동부전선의 병력을 빼와야 했고, 그렇게 하더라도 승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 중 일부는 그의 소망에 불과하다는 사실 - 없는 연료를 미군에게 빼앗는다거나 하는 (....) - 역시 그의 굳건한 의지엔 생채기조차 내지 못했다. 하지만, 물론, 현실은 개인의 의지가 굳든 아니든간에 전혀 달라지거나 하지 않는다. 모두가 우려했던 것처럼 연료는 중간에 바닥났고, 아르덴 공세는 실패로 끝났으며, 병력이 빠진 동부전선은 무너졌다. 그는 패했다.
공격을 개시하기 전, 파이퍼는 슬롯사이트 보병들이 계획대로 12월 16일 새벽에 돌파만 해준다면, 24시간 내에 뫼즈강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이제는 공격 개시 전, 판터 전차로 80킬로미터 이상을 주파하며 시험 주행을 해 연료를 써버린 것이 큰 실수였음을 알아차렸다. 농로가 진흙탕 범벅이었기 때문이다. 총통이 직접 파이퍼의 진격로를 결정해주었다는 사실도 전혀 위로가 되지 못했다. 만토이펠이 예측했던 대로, 이런 지형에서 전차의 연료 소비량은 카이텔이나 국방군 총사령부가 계산한 것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연료 수송 열차가 2대나 도착하지 못했기 때문에, 선봉대는 미군에게서 연료를 빼앗아 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사전에 전달받은 파이퍼는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사단 정보 장교가 뷜링겐과 스타벨로에 미군이 연료를 버린 곳을 표시해두었다. 하지만 미군이 휘발유를 200만 갤런이나 내다버렸다는 말메디와 슈파 사이의 프랑코르샹에는 휘발유가 없었다.
- p. 172. 12월 16일 토요일.
. 생각해보면 그런 슬롯사이트 모습은 '잡주'나 '잡코인'에 투자하다가 속된 말로 '한강을 가는' 이들과 다를 바가 없다. 문제는 그런 흔한 '한강러'가 전군에 대한 독단적이고 절대적인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책에는 그런 슬롯사이트 몽상을 막기 위해 모델과 룬트스테트 같은 이들이 (포기나 전면수정은커녕) 전략의 일부만을 현실에 맞게 변경하는 것임에도 독재자의 분노를 감수하며 필사적으로 읍소를 하는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심지어 작전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걸 스스로도 깨달은 상태에서조차 히틀러는 개인의 성취감과 체면을 위해 설령 기적적으로 점령하더라도 지킬 수 없는 바스토뉴 공격을 지시한다. 물론 도달하기는커녕 더 많은 병력이 희생되었을 뿐이다. 영원히 이길 수 있는 도박은 없다. 그만두는 시점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히틀러는 패배에 패배를 거듭하고 모든 병력을 잃고 포위된 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난 후에야 도박을 멈출 수 있었다.
동남쪽에서는 기갑교도사단의 제901기갑척탄병연대 돌격대가 공격에 나섰다가 고립되어 "문자 그대로 전멸"당했다. 이 연대는 남은 예비 슬롯사이트이 없어서 지원군을 기대할 수도 없었다. 가용 슬롯사이트이 남김없이 전장에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코코트는 더 이상의 공격을 중단했다. 제15기갑척탄병사단은 사실상 전멸했다. 코코트의 제26국민척탄병사단도 8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다. 거의 모든 중대가 20명 이하로 줄어들었다. 제78척탄병연대의 모든 대대는 슬롯사이트이 40명도 채 남지 않았다. 특히 경험 많은 장교와 부사관을 가장 많이 잃었다. 제26국민척탄병사단의 한 장교는 "우리는 바스토뉴에서 900미터 떨어진 곳까지 접근했지만 그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 p. 347.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