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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만과 바카라사이트 사이

바카라사이트의 추락

몇 년 전 겨울, 필리핀으로 여행을 갔을 때였다. 내가 여행 중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나는 분홍색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커다란 꽃을 귀 위에 꽂은 사진을 첨부해 여행 중이라는 답장을 보냈다. 친구는 지하철을 타고 이동 중이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대부분이 어둡고 진한 무채색 계열의 옷을 입고 있다며 화사한 내 옷 사진을 보니 기분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는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해, 개인이 지나치게 튀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왔다. 화려한 옷차림은 주목을 받을 수 있지만, 동시에 무리에서 벗어난다는 부담을 줄 수 있다. 이에 반해 무채색 옷은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단정한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어 부담 없이 선택할 수 있다.

바카라사이트 또한 한국 사회에서 오랜 시간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졌다. 바카라사이트은 자신의 능력이나 지위를 과시하지 않는 태도로, 타인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집단주의 사회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검정이나 회색 같은 무채색은 이러한 바카라사이트함을 표현하는 동시에, 과하지 않은 세련미를 담아낸다. 결과적으로, 주변과의 조화를 중시하고 주목받지 않으려는 마음이 무채색 선호로 이어지는 것이다. 물론 요즘 MZ세대들은 다르겠지만.


흔히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라는 말을 한다. 어릴 적 어른들은 “바카라사이트해라”라거나 “얌전하게 굴어라”라고 가르치곤 했다. 첫 직장에서 만난 선배는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편하게 회사 생활하려면 너무 잘하려고도, 너무 못하려고도 하지 마. 딱 중간을 유지해.” 또 한 번은 친한 선배 언니가 막 결혼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귀띔했다.

“시댁에 가서는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고, 적당히 어수룩한 척하는 게 좋아.”

이런 조언들은 모두, 튀지 않으면서도 무난히 균형을 지키는 삶의 기술을 말하는 듯했다.


이런 처세술이 몸에 밴 채로 살아가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이 사실은,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중간밖에 못 간 것이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착한 사람, 바카라사이트한 사람, 이해심 많은 사람으로 보이려 애쓰느라 진짜 내 모습을 버리고 그저 적당한 수준의 사람으로 자신을 묶어두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짜 날개를 달고 태양 가까이 날아오르다 추락한 바카라사이트처럼 인간의 오만과 과도한 욕망만이 파멸을 부르는 유일한 요인일까?


아테네의 뛰어난 건축가이자 발명가인 다이달로스는 그는 조카이자 제자인 페르딕스의 솜씨를 시기해서 그를 죽이고 아테네를 떠나 크레타 섬에 오게 되었다. 남다른 손재주로 미노스 왕을 위해 여러 가지 유용한 것들을 만들어 주었던 다이달로스는 왕의 보호를 받으며 살다가 미노스 왕의 시녀 와 결혼하고 그 바카라사이트에서 아들 이카루스를 낳았다. 미노스 왕의 왕비는 포세이돈이 보낸 황소와 간통하여 황소 머리에 사람의 몸을 가진 미노타우로스를 낳았다. 극대노한 미노스 왕은 들어가면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는 미궁을 다이달로스에게 만들게 하고 미노타우로스를 그곳에 가두었다. 시간이 흘러 다이달로스가 왕비의 간음을 방조했다는 사실이 미노스 왕에게 알려지자, 그는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자신이 만든 미궁에 갇히게 된다. 자신이 설계했지만 빠져나갈 수 었는 상황, 하지만 손재주가 뛰어난 다이달로스는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제작해 날아서 미궁을 탈출하기로 계획한다.


다이달로스는 탈출을 앞두고 아들 바카라사이트에게 날개를 단단히 고정시켜주며 엄중히 당부했다. 절대로 태양 가까이 날아오르지 말 것. 높이 오를수록 태양의 열기가 날개를 붙인 밀랍을 녹여 추락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우리가 흔히 아는 이카루스의 이야기는 인간의 바카라사이트에 대한 경고로 해석된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는 중요한 부분이 있다. 다이달로스는 바카라사이트에게 또 하나의 당부를 덧붙였다는 사실을. 그것은 너무 낮게 날아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바다 가까이 날면 습기로 깃털이 젖어 날개가 무거워지고, 결국 바다로 추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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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달로스와 바카라사이트, 오라치오 리미날디, 1625 / 다이달로스와 바카라사이트 ,안토니 반 다이크,1620


이카루스의 이야기는 단순히 교만의 위험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이면에는 지나치게 낮은 자세로 살아가는 것의 위험도 담겨 있다. 과도한 바카라사이트과 자기 억압은 때로 스스로의 가능성을 잃게 만들고, 나아가 자기 자신조차 구하지 못하는 선택이 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카루스의 비극은 우리가 균형을 잃을 때 벌어지는 결과를 경고하는 것이다. 자만으로 너무 높이 날아올라 태양 가까이 다가가도, 지나친 바카라사이트으로 낮게 날며 습기에 날개가 무거워져도 결국 추락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주는 진정한 교훈은 바로 적절한 높이를 유지하는 삶에 있다. 높고 낮음을 떠나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고,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것이야말로 삶에서 가장 중요한 비행법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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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카라사이트의 추락, 제이콥 피터 고위, 1636 / 바카라사이트를 위한 애도, 허버트 제임스 드레이퍼, 1898


제이콥 피터 고위의 <바카라사이트의 추락은 태양에 너무 가까이 날아간 결과, 밀랍으로 고정되었던 깃털들이 하나둘 떨어져나가고, 듬성듬성 남은 빈약한 날개를 달고 추락하는 바카라사이트를 생생히 그려냈다. 추락하는 바카라사이트를 바라보는 다이달로스의 놀란 모습과 바다로 곤두박질치며 스스로 초래한 비극을 깨닫는 그의 표정에는 절망과 후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반면, 허버트 제임스 드레이퍼의 <바카라사이트를 위한 애도는 세상을 떠난 바카라사이트의 주검 주변에 모여든 님프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면을 그렸다. 이 작품 속 바카라사이트를 보라. 바카라사이트는 조금 전까지 하늘을 날았을 것 같은 완벽한 형태의 날개를 지니고 있다. 이는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아 해체된 것이 아니라, 아버지 다이달로스의 두 번째 당부인 너무 낮게 날아 바닷물에 날개가 젖어 추락하지 말라는 것을 어긴 결과로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카루스를 위한 애도가 내 마음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 이유는 돌이켜보니 나는 자만심보다는 지나친 바카라사이트이 문제였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바카라사이트를 주제로 한 그림 중 가장 독특한 연출이라 생각되는 허버트 제임스 드레이퍼의 이 작품은 1898년 로열 아카데미에 처음 전시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허버트 제임스 드레이퍼는 빅토리아 시대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활동했던 영국의 신고전주의 화가로 그리스 신화와 역사적인 주제를 다룬 작품을 많이 남겼다. 세밀한 묘사와 질감 표현에 능해 인물의 살결, 머리카락, 물결의 움직임 등을 매우 정교하게 표현하여 관람자에게 강렬하고 낭만적인 감동을 경험하게 한다.


다시 다이달로스가 만든 미궁 이야기로 돌아가자. 미궁에는 미노타우로스가 갇혀있다. 크레타의 왕 미노스는 자신의 아들이 아테네에서 황소를 사냥하다가 사망하자, 그 책임을 물어 아테네에 가혹한 조건을 부과했다. 아테네는 9년마다 젊은 남녀를 인신공물로 바쳐야 했으며, 이들은 미궁 속에서 미노타우로스에게 희생될 운명이었다.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는 이 끔찍한 인신공양을 끝내기 위해 스스로 미궁에 들어가 미노타우루스를 처치하기로 결심한다. 테세우스가 크레타 섬에 도착했을 때 미노스의 딸 바카라사이트가 그를 보았다. 바카라사이트는 테세우스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고, 미궁에 들어가면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기에 그를 돕기로 한다. 그녀는 테세우스에게 붉은 실 뭉치를 건네며 "미궁에 들어갈 때 실을 풀며 들어가고, 나중에 그 실을 따라 나오라"고 알려주었다. 단, 테세우스가 살아 돌아오면 자신을 아테네로 데려가 줄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왜 공주들은 그렇게 적국의 왕자와 사랑에 빠지는 걸까?

테세우스는 바카라사이트 덕분에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하고, 풀었던 실을 따라 무사히 미궁을 빠져나온다. 약속대로 바카라사이트를 데리고 함께 아테네로 향하던 테세우스는 도중에 낙소스 섬에 머물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 바카라사이트를 남겨둔 채 홀로 떠나버린다.

홀로 남겨진 바카라사이트는 슬픔에 잠겨 테세우스를 애타게 불렀지만, 들려오는 것은 차디찬 파도소리 뿐이었다.


바카라사이트, 허버트 제임스 드레이퍼,


허버트 제임스 드레이퍼는 낙소스섬에 남겨진 바카라사이트를 그렸다. 테세우스가 떠나버린 바다를 향해 손짓하는 그녀의 모습이 애처롭다. 아버지 미노스 왕을 배신하고 사랑에 빠진 대가가 고작 버려지는 거라니, 바카라사이트의 슬픔은 사랑이 지닌 잔혹함과 배신의 무게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녀 주변으로 밀려오는 물결처럼 마음속 절망도 쉼 없이 몰아치고, 테세우스의 배가 멀어질수록 그녀의 희망은 점점 사라진다. 드레이퍼의 붓끝에서 펼쳐진 이 장면은 단순한 신화적 서사를 넘어, 버려진 사랑이 남기는 고독과 그 비극의 보편성을 탁월한 묘사로 절절하게 전달하고 있다.

그녀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술과 축제의 신 바쿠스(디오니소스)가 그녀를 발견한다. 바쿠스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그녀를 아내로 맞이한다. 바쿠스는 결혼 선물로 황금 왕관을 바카라사이트에게 주었고, 이 왕관은 나중에 하늘의 별자리가 되어 북쪽왕관자리로 영원히 빛나게 된다. 해피엔딩이다.


바쿠스와 바카라사이트, 티치아노 베첼리오, 1520


티치아노의 <바쿠스와 바카라사이트 낙소스섬에 버려진 바카라사이트와 바쿠스가 만나는 장면을 그린 작품인데 런던 내셔널갤러리에서 꼭 봐야 할 명화로 손꼽히는 걸작이다.

포도주의 신 바쿠스(디오니소스)는 자신을 따르는 추종자들과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서 늘 축제를 벌인다. 그날도 낙소스섬에서 거나하게 축제 한판을 벌일 생각이었다. 바쿠스의 상징인 표범이 끄는 마차를 타고 지나가다 바카라사이트를 발견한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첫눈에 반한 바쿠스가 그녀를 놓칠세라 전차에서 황급히 뛰어내리고 있다. 그런 바쿠스를 보고 바카라사이트는 깜짝 놀라고 그녀의 머리 위쪽 하늘엔 그녀가 곧 결혼 선물로 받게 될 왕관을 상징하는 별자리인 북쪽왕관자리가 빛나고 있다.

이 작품은 대각선 구도를 통해 두 개의 삼각형으로 나뉘어져 있다. 왼편의 삼각형에는 바쿠스와 바카라사이트의 첫 만남이 푸른색 위주로 생동감 있게 묘사되었고, 오른편 삼각형에는 추종자들의 소란스러운 움직임이 초록과 갈색 톤으로, 역동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두 삼각형은 대조적인 분위기를 통해 장면에 극적인 긴장감을 더한다.

티치아노가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로마에서는 기원전 2세기에서 1세기 바카라사이트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라오콘 군상이 발굴되어 예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었다. 뱀을 온몸에 감고 있는 남자는 라오콘 군상에서 차용하여 고전적 조각의 생동감을 회화에 재현하고자 했다. 또한, 꼬마 사티로스를 향해 짖는 강아지는 티치아노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모티브로, 이는 당대 왕실과 귀족들의 애완견 문화를 반영한다.

바닥에 놓인 티치아노의 서명이 새겨진 황금 항아리는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작품의 의뢰자인 알폰소 데스테 공작이 소유했던 고대 유물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런 표현들은 공작의 지적 취향과 권위를 드러내는 요소로 기능하고 있으며 이 작품이 알폰소 데스테 공작의 개인적인 공간을 위한 특별한 주문품임을 말해주고 있다.


신화를 읽다 보면 말도 안 되는, 때로는 과장되고 비현실적인 사건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그런 황당함 속에서 오히려 인간사의 본질과 닮아 있는 면을 발견하게 된다. 신화는 우리가 현실에서 겪는 혼란, 욕망, 갈등, 그리고 구원을 상징적으로 극대화한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아리아드네를 떠난 테세우스의 행위는 믿기 어려운 배신처럼 보이지만, 인간관계에서 얼마나 자주 변심과 책임 회피가 일어나는지를 생각해 보면 수긍이 간다. 또, 미노타우로스처럼 괴물 같은 존재를 미궁에 가두는 이야기는 우리가 두려움이나 문제를 외면하며 복잡한 마음속 깊이 묻어두는 모습과 닮아있지 않은가? 결국 신화 속 과장된 사건들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극적으로 투영한 거울과 같다. 사랑이 배신으로 이어지고, 영웅이 실패와 구원을 경험하며, 신들이 인간의 삶에 간섭하는 모습은 모두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치는 복잡다단한 삶의 축소판이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말도 안 되는 일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의미와 교훈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인간의 서바카라사이트듯 신화는 비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너무나 현실적이다. 신화를 주제로 한 그림을 보는 것이 너무나도 재미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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