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으로 뻗은 주남이네 감나무 가지에 매달린 서너 개의 납작이 감에 떫은맛이 아직 남아있어 오며 가며 침만 꿀꺽 삼키던 때쯤이었다.
어른들은 추수철이라 논으로 밭으로 바쁜 그 날들 중 슬롯 꽁 머니날이 콕 끼어있었다. 슬롯 꽁 머니날이 엄마들에게는'하필'이지만우리 국민학생들이야 날짜를 알게 된 날부터 매일 며칠 남았다고 손꼽아조바심 내며 기다렸다.
"**아, 이번 슬롯 꽁 머니 때 너는 뭐 싸갖고 갈래? "
" 엄마가 돈 좀 따로 주시면 좋겠다. 오는 길에 뭐 사 먹게."
슬롯 꽁 머니은 한참 남았어도 친구들과 슬롯 꽁 머니이야기는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엄마들의 주머니 사정이나 바쁜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린 우리들은 마당의 평상에 누워 푸른 하늘을 보며 먹고 싶은 과자를 둥둥 허공에 내뱉고 검지 손가락을 높이 들어 그려봤다.이왕이면롯데나해태제과종합선물세트를한 개 사주시면 좋겠다. 그러나 그럴 리가 만무하다. 단 한 번도 슬롯 꽁 머니 때 그런 적은 없었다.
김밥과 함께 가져간 것은 어느 나라 요술공주인가 머리 긴 서양 아이가 그려진 분홍 뚜껑의 긴 끈달이 물병. 여기까지는 슬롯 꽁 머니 가는 어느 누구라도 기본이다. 그다음부터는 집집마다 형편과 취향에 따라 엇갈린다.
가방 안에서 이리저리 뒹굴다가 뭉개지기 십상인, 아무리 조심해도 어린 등에 매달린 가방 안에서 이리저리 뒤섞여 멀미하느라 세 개 가져가면 한 개나 온전한 찐계란, 그와 환상의 꿀조합 칠성사이다. 그것도 초록색 잘빠진 몸매에 흰 별무리가 앙증맞은 병 사이다. 신호등사탕, 가을슬롯 꽁 머니엔 삶은 밤, 소주나 미강(속겨) 속에 넣어 우린 감이나 꼬맹이들 손에 잡히지 않게 나무 꼭대기에서 아직까지 매달린 달달 아삭 대추, 향긋 향긋쥬시후레쉬 껌도 한 통, 종합선물세트에 꼭 빠지지 않는 과자 '빠다코코낫'이나 '샤브레'가 있으면 이건 게임오버다.(가끔 연시를 가져와서 가방 안 간식들을 끈적이는 연시로 죽탕 만드는 친구들도 있기는 슬롯 꽁 머니)
친정 큰 고모는 1924년생. 꽉 채운 한 세기를 사시고도 올해 새해를 맞이하신 한국나이 102세이다. 미수이신 금쪽같은 막둥이 동생인 아버지와는 14살 차이. 이렇다 보니 아버지 어릴 적 한 동네에서 큰 고모의 아들들과 형제처럼 자라셨다. 큰고모의 여섯 아들 중 아버지와 가장 허물없이 삼촌 조카하며 지낸 고종오빠는 넷째 오빠 영문이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우리 아버지를 아버지 겸 외삼촌 겸 큰형처럼 의지하며 지내셨다. 슬롯 꽁 머니 결혼 이후에도 큰고모를 모시고 살면서 우리가 운동회를 하면 새언니와 갓난쟁이 조카를 데리고 함께 운동회에 참석하여 아버지와 나무그늘에서 거나하게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나와 스무 살 가까이 차이 나는 슬롯 꽁 머니 백부 숙부가 없던 내게 막둥이 숙부 같은 존재였다.
나는 친탁을 하고 슬롯 꽁 머니 외탁을 해서 코 모양이 똑같고 콧잔등에 깨소금 흩어놓은 것처럼 주근깨며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이 은근 비슷했다. 천성이 유쾌해서 늘 웃는 얼굴에 웃으면 하회탈 같은 얼굴이 되었다.
인정은 또 얼마나 많은지 어디서든 만나면 외사촌동생이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시고 근처 구멍가게 아무 데라도 손을 이끌고 가서 이것저것 덥석덥석 집어주셨다. 그날 가진 돈이 없으면 외상을 긋고서라도 봉지 가득 채워 들려 보냈다.
고종슬롯 꽁 머니지만 나이 차이가 많다 보니 조금은 어렵기도 했고 그럼에도 만날 때마다 빈손으로 보내지 않는 것을 알기에 친구들과 하교하다가 멀리서 슬롯 꽁 머니가 보이면 내심 기대를 하며 벌써 입에 침이 고였다.
주로 영문슬롯 꽁 머니와 마주치는 곳은 동네를 벗어나 논을 두어 필지쯤 지나고 벽면에 새마을 마크가 크게 그려진 정부양곡보관창고를 지나서 버스 다니는 큰 길이 시작되는 곳에 있는 슈퍼마켓 앞이었다.
그전까지는 지붕도 낮은 오래된 건물의 허름한 구멍가게가 전부였었다. 이발소가 있던 자리에 제법 번듯하고 현대식 분위기가 풍기는 슈퍼가 들어섰다.
영문슬롯 꽁 머니 죽마고우의 집이었다. 이제갓결혼한 신혼부부가 운영했으니 오빠 나이가 결혼적령기였나 싶다. 아직 미혼인 슬롯 꽁 머니 일이 없는 날이면 슈퍼집을 드나들었는데 슈퍼 앞에 그럴싸한 테이블과 의자를 내놓고 거기서 마른안주에 맥주거나 두부 넣은 찌개에 막걸리를 마시곤 했다.
사건은 가을 슬롯 꽁 머니 전 날 그슈퍼집에서 시작되었다.
아침에 등교 전에 밥상머리 앞에서 바쁜 엄마가 말씀하셨다.
"학교 다녀와서 숙제하고 심부름 좀 해라. 내일 슬롯 꽁 머니이니까 삼거리 쌀집 옆에 채소가게에서 시금치 200원어치랑 과자 두어 개 사와라."
울타리 안에 텃밭이 있었는데 밭에는 김장배추가 자라느라 시금치 뿌릴 공간이 없어 김밥용 시금치를 사야 슬롯 꽁 머니.
하교하는 길에 들러서 사가지고 오면 좋으련만 학교에 제출할 돈도 아니고 하교 때까지 갖고 있다가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염려 때문이었는지 꼭 하교한 이후에 다녀오라고 하셨다. 부엌 찬장 윗서랍 주발 안에 넣어놓은 돈을 꺼내서 다녀오라는 분부셨다. 다른 것도 아니고 김밥 만들 시금치인데 잃어버리면 큰일이다 싶어서 평소에도 말 잘 듣는 어린 나는 말씀대로 하교 후 천 원 지폐 한 장을 들고 기분 좋게 하교하던 길을 다시 거슬러갔다.
심부름, 혼자라도 오늘은 기분 좋게 콧노래도 부르며 팔짝팔짝 앙감질도 하고 뛰다 걷다 논을 두어 필지 지났다. 추수철이라 판잣집채 만한 창고문이 양쪽으로 활짝 열린 정부양곡보관창고도 지나고 신작로에 다다를 때쯤 슈퍼마켓 앞 테이블에 영문슬롯 꽁 머니가 주인인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게 보였다. 주머니의 돈을 손으로 만져보았다. 천 원 그대로.
"슬롯 꽁 머니, 안녕하세요?"
"오, 그래 어디 가냐? 이리 와."
"엄마가 내일 슬롯 꽁 머니김밥 싼다고 시금치 사 오래요."
"내일 슬롯 꽁 머니 가? 어디로? **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슬롯 꽁 머니지는 그때까지 오직 한 군데 **산이었다. 산이 가까우니까 먼 길로 돌아 돌아 **산 뒤쪽으로 올라가는 길. 그곳이 젤 만만한 슬롯 꽁 머니지였다.
"그려, 얼른 시금치 사 갖고 와."
어라? 다른 때 같으면 슬롯 꽁 머니가 바로 과자봉지를 집어줄텐데 아무 말이 없이 시금치를 사 오란다. 설마 내일이 소풍인데 그냥 말겠어? 어린 마음에 기대반 의문반으로 과자를 사주면 어떤 과자를 고를까 생각하며 채소가게에 다다랐다.
하필 시금치가 동이 나고 없었다. 다음 채소가게는 면사무소 근처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그러면 그동안에 오빠가 집에 가시고 슈퍼 앞 테이블에 안 계실 수도 있다. 난감슬롯 꽁 머니.그때 당근 사러 오신 손님이 말슬롯 꽁 머니.
"우리 집 텃밭에 시금치 있는데 그거라도 캐서 팔을까? 너 어떻게 할래? 길 건너 조금만 올라가면 교회 앞이 우리 집인데 따라갔다 올래?"
면사무소 앞 채소가게보다는 훨씬 가깝다. 고민할 것도 없이 그러겠노라 대답슬롯 꽁 머니.
돈 200원은 시금치 주인이 받고 나는 그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서 시금치 밭 가에 서 있었다. 마음은 점점 초조해져 시금치 밭가를 왔다 갔다 왔다 갔다 슬롯 꽁 머니. 그러거나 말거나 시금치 아주머니는애타는내 마음과달리 몇 학년이냐는 둥 어디에 시금치를 쓸 거냐는 둥 이런저런 질문을 하며자꾸시금치를더 캐느라시간이지체되었다.
아주머니는 가게보다 훨씬 많이 주는 거라며 생색을 냈지만 양많은 것보다 빨리 돌아가는 게 더 중요한 나는 시금치 봉투를 채듯 건네받고 냅다 뛰었다. 주머니에서 800원이 함께 짤랑거리는데 잃어버릴까 봐 주머니도 꽉 움켜쥐고 뛰었다.
신작로에 다다라서 얼른 슈퍼 앞 테이블을 쳐다보았다. 영문슬롯 꽁 머니가 거기 있었다.
아, 안심이다. 이제부터는 거친 숨을 고르면서 태연하게 천천히 걸어도 되었다.
미리 봉투에 담아놓았는지 오빠가 손가락으로 가게 쪽을 가리켰다. 가게 문 앞에 볼록한 봉투가 얌전히 놓여있었다. 손으로 들어보니 묵직슬롯 꽁 머니. 뭐가 들어 있는지 알 필요는 없었다. 뭐든 다 맛있을 테니까. 그리고 오빠가 따로 사이다 한 병을 챙겨주었다.
안주인이 말슬롯 꽁 머니.
"병 값을 미리 빼줬으니까 다 먹고 나서 빈 병은 꼭 갖다 줘야 해."
"네."
희희낙락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꼭 그러겠노라고 대답슬롯 꽁 머니. 오빠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입이 발채만 해져서 돌아왔다.
집에서 학교 가는 길은 세 가지가 있다. 정부양곡보관창고를 지나고 슈퍼 앞으로 난 신작로를 따라가는 길이 가장 많이들 오가는 길이다.
지름길로 철길 건널목을 건너 작은 동네를 지나 논밭 샛길로 가는 길이 있지만 외진 길이라 어쩌다 한 번이다.
또 한 군데는 위험해서 금지된 길인데 철길을 따라 걷다가 역이 나오면 거기서 역사 밖으로 빠져나가는 길이 있다. 이 길은 겁 없는 고학년 슬롯 꽁 머니들이나 가는 길이다.
슬롯 꽁 머니지에서 잊지 않고 빈 병을 잘 챙겨 왔다. 병을 깨끗이 씻어 마루 끝에 잘 세워 놓았다.
다음 날 학교 가는 길에 빈병을 깜빡 잊고 그냥 나왔다. 꼭 그러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빈 손이었다. 다행히 슈퍼 앞에 주인이 보이지 않았다. 벌써 가게 앞을 깨끗하게 비질한 흔적이 있고 물까지 뿌려놓은 것을 보니 주인이 언제 가게에서 나올지 몰랐다.
휴우, 다행이다. 재빨리 가게 앞을 통과슬롯 꽁 머니. 하교 때는 친구를 졸라서 논밭 샛길로 함께 걸었다. 집에 가자마자 잊지 않도록 병을 가방에 미리 넣어 두어야지 생각하며 돌아왔다.
빈 병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깨끗이 씻어 세워놓았던 병이 사라졌다. 동생에게 물었지만 모른다 슬롯 꽁 머니. 언니, 오빠가 오기를 기다렸다. 역시 모른다 슬롯 꽁 머니. 거기 있던 병이 어디 있단 말인가. 무슨 사이다 병이냐고 도리어 내게 물었다.
"너 사이다 먹었어? 혼자? 무슨 사이다병?"
영문오빠가 딱 한 병 사준 사이다. 몰래 혼자 가져가려고 미리 소풍가방 속에 아무도 몰래 챙겨놓았었다. 자초지종을 말하지 못슬롯 꽁 머니. 내색 없이 사이다 병을 찾느라 온 집안을 몰래 뒤지고 다녔다. 결국 못 찾았다. 심증은 있었다. 분명 엿 반가락 대신 엿장수 아저씨 수레에 실려갔을 것이다. 엿장수가 오면 엿과 바꾸려고 모아놓은 비료포대도 사라졌으니까.
다음 날 아침, 약속을 어긴 죄인이 되어 슈퍼 앞을 몰래 지나야 슬롯 꽁 머니. 조마조마슬롯 꽁 머니. 다행히 무사히 통과슬롯 꽁 머니.
하교 때는 토요일이라서 동네마다 6학년이 깃발을 세워 들고 두 줄로 서서 온 마을 학생들이 함께 하교해야 슬롯 꽁 머니. 슈퍼 앞을 지날 때 우리 동네 학생들이 모두 무리 지어 지나가야 하니 나를 따로 붙잡아 세우고
"너 왜 빈 병 안 가져왔냐?"물어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덜 불안슬롯 꽁 머니.
슬롯 꽁 머니 여전히 그 가게 앞 테이블에 앉아서 슈퍼집주인과 술잔을 기울였는데 멀리서 그 모습이 보이면 일부러 신작로 건너편 동네를 통과해서 다시 되돌아오는 길로 하교했다. 그렇게 슈퍼집 앞을 떳떳하게 지나다니지 못했다. 그 사이다 빈 병 한 개 때문에 영문오빠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건네주는 과자를 얻지 못했다.
이제는 도저히 먼 길을 돌아가거나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슈퍼집 앞을 지나다닐 수 없었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는지 하루는 슈퍼집주인 앞에서 당당히 그 앞을 지나갔다. 왜 빈병 안 가져오냐 물으면 그땐 죄송하다고 용서를 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주인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아닌가. 당당히 지나가도 계속 빈병에 대해 물어보지 않는 것이었다.
그동안 몰래 지나다녔던 게 조금은 억울슬롯 꽁 머니. 한편 다행이고안심도되면서어쩐지 눈물이 났다. 그렇더라도 일부러 빈병 얘기를 먼저 꺼내고 용서를 구할 용기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무려 일 년 가까이 빈병을 갖다 주지 못했고 약속을 지키지 못한 슬롯 꽁 머니쟁이가 되어 슈퍼집 앞을 당당하게 지나가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째서 가족들에게 말을 못 했는지, 안 한 건지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다만그 심적 부담감은 지금도 선명하다. 그 앞을 지날 때의 조마조마 두근두근하던아홉살 어린 내 마음.
그 시절 외삼촌과 조카로, 아버지와 아들처럼 지내던 내 아버지와 영문오빠. 올해 미수가 되시는 아버지는 여전하신데 슬롯 꽁 머니 어찌 된 일인지 외삼촌보다 더 일찍 세상을 떠난생질이되고 말았다. 벌써 30년도 훨씬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