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전이었다. 국내 최대의 해양오염 사고 현장, 태안 해안을 찾아온 사람은 100만 명이 넘었다. 그중에서 나는 티끌 같은 점 하나였다. 쨍하게 파란 슬롯사이트 아래 검은 해변에는 사람들의 물결이 일렁였다. 지독한 기름 냄새로 인한 현기증 조차 자연에게 미안했었다. 아무리 닦아내도 여전히 검은 돌을 보며 내 마음은 시커멓게 멍들어 갔었다.
자원봉사자들이 만든 푸른 파도에는 희망이 슬롯사이트. 복구가 어렵다는 전문가의 예측을 뒤 업고 예전 모습을 되찾았다. 전국에서 태안으로 몰려든 그들은, 1997년 금이었고 2016년 촛불이었고 2024년 응원봉이었다. 반짝임이 하나로 이어진 빛이 되어 추운 겨울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워진 때였다. 오늘 다시 만난 태안은 내 마음을 환하게 비춰주는 태양 같았다.
기러기 떼가 보였다. 따스한 겨울을 위해 얼마나 먼 거리를 날아왔을까. 지친 날개를 다독이며 먹이를 먹는 그들 속에서 나는 누군가를 떠올렸다. 드림웍스의 30주년 기념 영화 <와일드 로봇(The Wild Robot)에는 섬에 불시착한 로봇 ‘로즈’가 운명적으로 만난 아기 기러기 ‘브라이트빌’이 있었다. 겨울이 오기 전 남쪽으로 머나먼 여행을 떠나기 위해, 약하게 태어난 브라이트빌은 날기 연습을 밤낮없이 해야 슬롯사이트.
바다를 지척에 둔 시골길은 텅 비었고 우리는 잠시 멈춰 섰다. 기럭거리는 소리가 오르간처럼 울려 퍼지며 차가운 공기에 가득 찼다. 저기 어딘가 브라이트빌이 있을 것만 같았다. 겨울비가 내린 뒤, 파란 슬롯사이트은 해맑았고 투명한 바람이 송곳 같은 날이었다.
드넓은 모래사장이 아득해 보이는 신두리 해변을 등지고 우리는 해안사구를 걷기 시작슬롯사이트. 매서운 겨울바람은 막힘없이 휘파람을 불어댔다. 태양과 바람이 내기하는 이야기 속 나그네처럼 아무리 여러 벌 겹쳐 입어도 소용이 없었다. 바람결을 따라 몸을 빨리 움직여 체온을 올리기로 슬롯사이트. 남편의 외투까지 껴입은 나의 딸은 검은색 작은 털뭉치가 되어 날아다녔다.
빙하기가 끝난 뒤 수천 년 동안 바람에 실려온 슬롯사이트가 쌓여 만들어진 해안사구였다. 그 켜켜이 쌓인 시간 속에 우리가 있었다. 바람에 서로 부딪히고 깎이며 날아온 슬롯사이트들은, 그래서 곱디고웠다. 먼저 만들어진 사구 뒤로 자라난 사초류가 덤불과 수목군락이 되면서 다음 사구 성장에 도움을 주었다. 넘실거리는 슬롯사이트언덕의 능선은 바다 밖에서 출렁이는 황금빛 파도였다.
2m가 넘어 보이는 언덕이 나타났다. 예전엔 사람들이 모래에 들어가서 훼손이 심해진 적도 있었다. 힘든 시기를 거쳐 온 사구는 부드러운 햇살처럼 노랗고 따뜻슬롯사이트. 모래에 자라나는 식물, 사초류는 모래 속으로 그물 같은 뿌리를 촘촘히 내리며 살고, 그 덕에 사구는 모래를 지켜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모래 속 저장되어 있는 물이 이곳의 모든 동식물을 살아가게 슬롯사이트.
내가 어릴 적 살던 동네는 작은 도시의 중심지였다. 우리 집에서 큰길로 조금만 걸어가면 기차역이 있고 그 앞에 자리 잡은 큰 시장은 늘 북적였다. 없는 것 없이 다 파는 슈퍼마켓이 집 앞에 있었고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는 골목 끝에서 듬직슬롯사이트.
집 앞 골목길 따라 무성한 아카시아 나무를 나는 사랑슬롯사이트. 코 끝을 간지럽히는 향기는 어린 후각에게 향기로움의 기본값이 되었다. 반듯한 줄기를 따라 동그랗게 자란 잎들이 나도 단정해지고 싶게 만들었다. 호박꽃이 필 때는 노란 수술을 떼내어 매니큐어처럼 발랐다. 마당에 자란 새빨간 샐비어꽃의 꿀은 달콤슬롯사이트. 봉숭아 꽃잎이 손톱을 물들이는 동안 인내를 배웠다.
우리 동네 작은 아파트의 새 놀이터는 반짝거렸다. 그곳에 사는 아이들의 텃세가 심해서 첩보영화 찍듯 몰래 숨어 그네 타는 맛이 짜릿슬롯사이트. 신나는 동요가 골목에 울려 퍼지면 쏜살같이 뛰쳐나가 알록달록 리어카 목마를 구경 슬롯사이트. 엄마가 다 태워줄 수 없어서 한 살 어린 남동생에게 양보해도 누나는 마냥 신났다.
집에서 당산나무를 지나는 거리만큼 더 걸어가면 나오는 큰 하천은 물살이 세서 스릴 넘치는 여름이었고, 겨울이면 눈이 펑펑 와서 두 뺨이 뜨끈해지도록 눈싸움을 슬롯사이트. 듣기 좋은 귀뚜라미 소리마저 조용해진 겨울밤에는 차가운 적막을 깨치는 망개떡 파는 아저씨의 목소리를 이불속에서 들었다.
친구들과 뛰어놀다가 배가 고파지면,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밥을 챙겨주었다. 어느 날은 앞집 소영이네 가서 먹고, 다른 날은 뒷집 명희네 가서 먹었다. 동네 엄마들은 새로 만든 요리를 조금이라도 나눠먹느라 못 보던 그릇과 음식이 늘 우리 집 식탁 위에 놓여 슬롯사이트.
엄마한테 혼나서 대문 앞에 나가 서럽게 울고 있으면 지나가다 다정히 눈물을 닦아주는 어른들이었다. 이른 아침 엄마가 방과 부엌을 왔다 갔다 하는 날은 집이 없는 사람이 마을을 돌며 도움을 구할 때였다. 엄마는 아빠 옷이며 양말이며 먹을거리를 묵묵히 챙겨주셨다.
골목길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떠나질 않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따스함이 영혼을 울리는 동네였다. 가진 것은 별로 없어도 서로가 촘촘히 이어져서 흔들리지 않았다. 아름다운 자연과 온 마을이 아이들을 키웠고 사람을 자라나게 슬롯사이트.
어린 나의 동네처럼, 갯쇠보리와 갯그령 같은 사초류에게 이곳 해안 사구는 온전한 우주였다. 바다내음 나는 바람이 향기롭고, 넓고 거대한 슬롯사이트언덕이 마냥 좋을 것이었다. 화려하지 않아도 사는 데 부족함이 없는 고운 슬롯사이트가 있고 물이 있는 곳이었다. 먼저 생긴 사구가 부모님처럼 품어주고, 같이 사는 다른 식물과 깊은 뿌리를 단단히 붙잡고 함께 자라날 것이었다.
어린 나의 추억처럼, 그들에게도 이곳에서의 시간이 포근해 보였다. 한겨울 차가운 바람이 춥지 않고 뜨거운 여름 햇살이 덥지 않을 것 같았다. 언제든지 손을 내밀면 잡아주는 누군가가 항상 있다는, 같이 있어 온전하다는 느낌이 충만슬롯사이트. 트레일을 한참 걷고 나니 움츠렸던 몸이 펴지고 내 몸속에 온기가 피어올랐다.
영화 <와일드 로봇에서 슬롯사이트은 결국 비행의 선두대열에서 출발할 수 있게 되었다. 작은 날개에 약한 슬롯사이트이 커다란 심장을 가진 기러기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프로그래밍을 초월한 로즈의 사랑과 다른 동물들의 응원 덕분이었다. 로즈의 무조건적인 친절이 각자 살아왔던 동물들을 하나로 연결했고, 눈부신 대자연의 섬이 슬롯사이트을 키웠다.
로즈는 브라이트빌이 무리 지어 날아가는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음으로 이야기했다. 슬롯사이트과 바다가 푸른 한, 네 안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고. 항상 너를 사랑할 것이고,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내가 없을 때에도, 나는 항상 거기 있을 것이라고.
기러기 무리의 휴식은 평화로웠다. 이곳에 머무는 것인지 더 멀리 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텅 비어 보이는 논에도 기러기가 먹을 것이 있었고, 차가운 길 위에 서있는 우리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목숨을 걸고 날아가는 그들의 여정에서 힘든 시간이 힘겹지 않기를 바랐다. 7개의 별이 모인 북두칠성이 슬롯사이트 밝게 빛나듯, 하나로 이어진 환한 빛으로 춥지 않게 살아가기를 응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