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 꽁 머니 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나만 잘하면 된다는 말이 제일 어려워요

[밝은 밤 - 최은영]을 읽고



슬롯 꽁 머니




"

슬롯 꽁 머니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슬롯 꽁 머니 없는 사람으로 살고, 슬롯 꽁 머니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본문 중에서




희령 천문대의 연구원 채용공고에서 합격 소식을 듣고 나는 부리나케 서울을 떠났다. 한 달 전 이혼을 하고 난 후였기에 그 어떠한 미련도 없었다. 바람을 피운 건 남편인데 오히려 그렇게 몰아세운 것도 나였다며 슬롯 꽁 머니 아빠까지 되려 나를 비난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이십여 년 만에 슬롯 꽁 머니를 마주했고 나와 가장 많이 닮았다는 증조슬롯 꽁 머니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나는슬롯 꽁 머니에서 나의 엄마, 나로 이어지며 치유되어 가는 삶을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슬롯 꽁 머니


증조모가 슬롯 꽁 머니 영옥을 낳고부터 증조부는 서서히 참아왔던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했다.

양민이었던 자신은 모든 걸 포기하고 백정의 딸을 받아줬건만 돌아온 건 처음부터 양민이었던 양 살갑지 않은 증조모의 태도가 못내 못마땅했으며 더욱이 아들만 치대 받던 시절 딸을 낳았기에 쌓여 있던 스트레스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걸 지켜보고 자란 슬롯 꽁 머니는 증조부의 사랑을 애달아하면서도 내색을 할 수 없었고 새비 아주머니의 딸 희자와 가끔 어울리며 외로움을 달랬는데 그 마저도 피난길로 떠나 버리자 혼자 노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스무 살에 후딱 치러진 자신의 혼례와 또다시 사랑받지 못할 딸 미선을 낳았다.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해 있던 내내 슬롯 꽁 머니는 나의 병실을 지켰다. 엄마와 단둘이 있는 것조차 부담스러웠기에 오히려 슬롯 꽁 머니가 편안하게 느껴졌다.

퇴원하기로 하던 날.

엄마는 나의 거절을 무시한 채 병원으로 들어섰고, 그만 가보겠다며 나서는 슬롯 꽁 머니와 둘은 입구에서 마주했다. 어떤 연유에서 비롯되어 소원해진지 이십 년만의 만남은 서먹한 듯 바라보다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으며 헤어지는 말미엔 손을 흔들며 웃음을 보였다.

오랜 세월 연락을 끊었던 모녀 사이 같지 않게 슬롯 꽁 머니와 엄마의 다정한 모습처럼 우린 연출되지 않았고 엄마와 나 사이의 불편한 간극은 쉬이 좁혀지지 않은 채 또다시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는 말싸움에 들었다. 언제나 내가 문제라는 질타로 시작되어 일방적인 나의 울분으로 끝나고 마는.

슬롯 꽁 머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돌아섰다. 그건 폭로보다는 자신이 다칠까 봐 더 내면을 꼭 닫고 지낼 수밖에 없었던 슬롯 꽁 머니 미선의 어린 시절 때문이었다. 미선은 죽은 줄만 알았던 처자가 살아있다는 소식에 북으로 떠나버린 호적에만 존재하는 아버지를 잊고 지내야 했고 오로지 슬롯 꽁 머니 손에서 자라며 보호할 수 없는 아이들만 골라 괴롭히던 선생님에게 멸시를 당하고 혼자 감내하며 버텨내야 했기때문이었다.


나는 희령을 떠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찾은 슬롯 꽁 머니와의 대화에서 엄마가 내 이혼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던 건 평범한 가정을 꿈꾸었기에 순탄치 않은 아빠와의 결혼생활에서도 참고 살았으며 그걸 나에게도 바라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엄마와 벌어졌던 틈을 찬찬히 메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슬롯 꽁 머니는 엄마를, 엄마는 나를 용서했다.

우린 가슴속 깊이 묻어두었던 사진첩을 정리하며 한바탕 웃으며 시간을 보냈다.









현실의 나와 100년 전의 일을 오가며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건 슬롯 꽁 머니였어요. 디테일하게 묘사되는 감정 표현이 책을 쉬이 놓지 못하게 하는 이끌림이 너무 좋더라고요.

슬롯 꽁 머니에서 나로, 나로부터 슬롯 꽁 머니에게로 이야기는 옮겨지며 사이사이 벌어져 있던 모녀 관계의 틈을 서서히 메워나가면서 화해의 발판이 되어주었죠.

결국은 엄마도 어린 시절의 미선이로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참고 살았으며 그 원망의 대상이 슬롯 꽁 머니에게로 향하면서 절연 상태로 몰고 갔던 겁니다. 그 대물림이 되지 않기 위해 주인공 지연이에게도 모진 말을 쏟아내 가며 가정을 유지하기를 바랐던 것 같고요.



슬롯 꽁 머니


"이상한 일이야.

누군가에게는 아픈 상처를 준 사람이,다른 누군가에게는 정말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게."



그렇게 상처와 사랑을 반복하며 또 연대해 가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도 해요. 돌고 돌아 이야기의 주인공은 슬롯 꽁 머니의 삶과 묘하게 닮았다는 걸 인지합니다.


"언젠가 이 일이 아무것도 아닌 날이 올 거야.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 그럴 거야."


그렇게 또 위로를 받으면서요.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또 나름의 방식을 찾아 그렇게 사는 것처럼요. 그런데 생각이 많이 담긴 감정이 쉬이 가라앉지 않는 오늘입니다.

슬롯 꽁 머니라는 몸속 장기라는 말을 다시 언급해 보며 마음 없이 지내고 싶어 지면서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