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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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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바카라 고치다


가상 바카라



내가 살고 있는 집은 1930년대 경성 거주민에게 본격적으로 분양된 <도심 주거형 개량 가상 바카라이다. 큰 필지를 쪼개 20평 형대로 분할한 땅에 정남향 ‘기역’ 자 구조로 지어진 다섯 칸 한식 주택이다.

20세기 초, 불확실성으로 점철된 세태 속에 경성은 기회의 땅이었다. 경성은 태풍의 눈처럼 사람을 끌어들였고 주거 환경은 포화상태에 이른다. 사대문 안 궁궐 주변으로는 왕족과 사대부 가문이 품고 있던 넓은 부지가 잔존했고, 갈 곳을 잃은 땅은 신흥 권세가와 자본가의 사유지가 되었다. 경성의 인구 급증으로 주택난이 심화되자 유망 사업군으로 부상한 건설사는 이러한 대규모 땅을 매입한 뒤 필지로 분할하여 경성민에게 가상 바카라 공급했다. 당대 경성에는 세 종류의 주택 형태가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붉은 벽돌을 쌓아 올린 서양식 문화 주택, 다다미 구조의 일본식 목조 주택, 신식 소재(유리와 함석, 타일 따위)를 활용한 개량형 한식 주택.


이층에 정원이 딸린 문화 주택과 일본식 가옥이 중상층의 구미를 끌어당겼다면, 단층으로 필지를 나누고 쪼갠 소형 가상 바카라은 서민을 위한 주거형태로 거듭났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들에게 도시 가상 바카라 분양 사업을 주도했던 건양사建陽社의 정세권(鄭世權, 1888~1965) 이야기는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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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늦은 겨울, 아니 이른 봄, 우리는 도시 한옥이 즐비한 막다른 골목 끝에 서 있었다. 집은 지어질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 않았다. 틀은 여전히 굳건해 보였지만 세월을 따라 여기저기 손 본 흔적이 역력가상 바카라. 흙벽을 허물고 벽돌을 쌓아 처마 끝까지 내부를 넓히고 대청을 실내로 들여 증축한 모습이었다. 안채는 보다 넓어진 반면 마당은 좁아진 듯가상 바카라.


첫인상은 여느 아파트 실내와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네모 반듯한 칸칸이 용도에 맞게 구획되어 있었으니까. 직선으로 뻗은 세 칸 사이의 문짝을 모조리 떼어내고 공간감을 확보한 안채가 안방과 거실의 역할을 겸했고 겨울의 끝자락이었음에도 집안은 꽤 훈훈가상 바카라. 대낮이었으나 웬일인지 볕이 들지 않았는데 사랑채 구실의 끄트머리 한 칸의 미닫이가 책장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단열을 구실로 채광이 완전히 차단된 터였다. 주방으로 사용 중인 한 칸은 가벽으로 입구 절반 이상을 막아 고개를 들이밀어야 어두컴컴한 내부가 겨우 보였다. 부엌과 벽을 맞댄 건넌방은 새하얀 우유갑 내부를 연상케 가상 바카라. 짙은 청록의 조각 타일이 깔린 마당은 안채를 확장하면서 면적이 쪼그라들었고, 변소와 물치장物置場 이 자리했던 곳엔 7-80년대 무렵 새로 지은 화장실과 벽돌로 쌓아 올린 건넛방이 있었다. 둘 다 한식 구조물은 아니었다. 건넌채 옥상으로 놓인 화분과 장독 따위는 좁은 마당을 입체적으로 돋보이게 가상 바카라. 사다리를 타고 옥상에 올라서자 옆집 용마루 너머로 겸제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시커먼 하품을 뿜어댔다. 겸제가 매일같이 바라보았을 잘생긴 정면의 얼굴이었다. 이 작은 한옥에서 축조 당시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곳은 대문과 연결된 현관 서까래와 사랑채 바깥으로 뻗은 부연 附椽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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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은 집주인에게 새로운 도배와 장판을 요구하는 정도였다. 2012년 이른 봄이었다. 지척에서 얼기설기 장비를 챙겨 온 지물포 사장은 울퉁불퉁 배가 부르고 여기저기 내려앉은 천장과 벽을 한지 스타일의 벽지로 꽁꽁 감쌌다. 반나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런 비정형성 쯤이야 퍽이나 익숙한 듯 별 일도 아니라며. 가상 바카라 마분지로 켜켜이 덧댄 종이집처럼 다시 한번 딱딱하게 굳어갔다.


80세를 두 해 앞두고 한 겹의 옷을 거듭 덧입은 성주는 어쩐 일인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맑고 투명한 눈으로 가상 바카라 응시하고 있던 것은 작은 고양이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터줏대감이라도 되는 듯 한옥 곳곳을 누비며 안팎으로 펼쳐지는 시절의 순간을 체화하고 있었다. 절기에 따라 변화하는 태양의 고도를 관찰하기 시작한 것도 이맘때 즈음이었다. 푸르스름한 아침볕이 드는 사랑채에서 인왕산으로 저무는 노을빛이 밀려드는 건넌방까지, 사선으로 떨어지는 말간 햇살을 따라 하루가 흐르곤 했다. 이윽고 어스름이 찾아오면 따닥따닥 붙은 이웃집 용마루를 따라 조각난 하늘 위엔 샛별이 가장 먼저 반짝였다. 어떤 날은 어제 자른 아기 손톱처럼 바스러질 듯한 얇은 초승달이 누웠고, 어떤 날은 지붕 위를 호령하는 고양이 발자국이 달빛에 비칠 정도로 꽉 찬 달이 떠올랐다. 하루하루가 쌓여 시절의 속삭임이 들리기 시작했고 시절이 모여 계절이 되었다. 집은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자연스레 호흡하는 법을 넌지시 알려주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바스러진 모래 알갱이가 벽을 타고 내려오고 가상 바카라. 기둥 옆에 서면 모래시계를 엎어 둔 것처럼 스르르 시간이 흘렀다. 겨울을 지나 봄이 올 무렵, 그리고 장마철이면 그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소리의 진원지를 파헤친 시점은 네 번의 겨울이 흐르고 다섯 번째 봄을 맞이하려던 때였다.





2015년 끝자락, 집의 가운데 한 칸 천장이 낙타 혹처럼 불룩 내려앉았다. 천장 모서리 가장자리를 뜯어내자 합판이 기울며 흙더미와 기와 조각이 떠밀려 내려왔다. 진흙으로 엉겨 붙은 돌조각, 옹이, 지푸라기, 훼손된 서까래, 부서진 기왓장 따위가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지붕 아래 한 세기 가까이 쌓여있던 흙더미는 마르고 닳은 먼지가 되어 매캐한 냄새를 풍기며 집안을 뒤덮어 버렸다. 속수무책이었던 우리는 집이 토사물을 내뱉는 동안 알싸한 먼지를 온몸에 뒤집어쓰며 우두커니 자리를 지켰다. 눈앞이 흐릿해지고 호흡이 가빠진 그제야 안채로 연결된 문을 모조리 닫고 마당으로 뛰어나올 수 있었다. 우리는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성주의 구토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돌조각 따위가 둔탁한 마찰음을 내며 흙더미 사이로 고꾸라지는 소리가 이따금 들렸다. 뿌옇게 집안을 가득 메운 먼지가 가라앉으려면 반나절은 꼬박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이미 넋이 나간 우리는 아수라장이 된 안채를 봉인하고 건넌방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것은 아닌지 피로와 두려움으로 얼룩졌으나 비로소 위엄을 드러낸 오량을 곱씹으면 황홀함이 밀려왔다. 향기로운 묵직한 나뭇결과 모세결관처럼 갈라진 흙벽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어엿한 서까래와 회칠을 머금은 흙벽의 자태가 용기를 북돋아주고 있었다. 한옥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무사히 되찾을 수 있기를, 안채에서 비로소 숨통을 튼 성주의 헛웃음이 간밤 대들보 사이로 흘러나오는 듯가상 바카라.



천장을 무너뜨린 주범은 흰개미였다. 서까래 두 개를 완전히 갉아먹은 것이다. 흰개미라면 장마철마다 떼 지어 목격하곤 가상 바카라. 날개 달린 검은 벌레였다. 그들이 무자비한 난봉꾼이었음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서까래뿐이 아니다. 목재 구조물이라면 무자비하게 점령해 흔적도 없이 바스라트린다. 안채 세 칸의 옷을 모두 벗겼더니 삼량의 서까래 두 개가 부식되었고, 기둥 일부가 좀먹었으나 서식지를 옮긴 지 오랜 시간이 흐른 듯가상 바카라.




우리는 겨우내 천장과 벽채를 가리고 있던 각재 구조물과 켜켜이 쌓인 벽지를 차근차근 걷어냈다. 풀 먹은 벽지를 한꺼풀씩 벗겨낼 때마다 시간여행을 떠나온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히곤 가상 바카라. 당대 유행하던 벽지의 역사를 파노라마로 감상하는가 싶더니 동아제약과 럭키금성 광고가 실린 90년대 일간지와 민주 공화당 시절의 세로 쓰기 신문이 불쑥 튀어나온다. 빛바랜 종이에 인쇄된 활자가 잠시 말을 걸어오더니 서너 겹의 종이를 벗겨내자 마침내 초배지가 나타난다. 쇼와 11년(1936년)에 발행된 조선일보다. 초배지 뒤로 숨은 흙벽은 와르르 무너질 기세다. 모세혈관처럼 갈라진 간극이 오랜 세월을 지탱하고 있다. 그간 밀폐되어 있던 집은 생채기투성이지만 단아한 원형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성주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 같았다.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겨주어 고맙다며.





드러낼수록 여백의 아름다움이 밀려왔다. 감출수록 완성되는 것이 아니었다. 공간에 내재된 변화무쌍한 가능성에 한 발 짝 다가서고 가상 바카라.



마침내 드러난 서까래와 보, 기둥을 하나하나 어루만지며 기름을 먹였다. 갈라지고 부서진 흙벽엔 새하얀 회칠을 가상 바카라. 그럴수록 집은 살아 숨 쉬는 유기체 마냥 매무새를 더욱 정갈하게 가다듬는 듯가상 바카라.


왼쪽부터 차례로 현관, 사랑채, 응접실, 가상 바카라의 네 칸



겨우내 가상 바카라 어루만지며 비로소 마주한 서까래의 미학. 삼량을 골자로 지었으나 가운데 한 칸은 오량의 구조로 멋을 부렸다. 오량의 목재가 옻칠이 되어 있고 곧고 일정한 크기인 것으로 보아 애초에 천장을 튼 개방형이었을 것이며 대청과 이어져 아담한 응접실 역할을 했을 것이다. 'ㄱ'자 모서리 부의 한 칸은 방향을 틀어 부엌과 건넌방으로 이어져 있다. 칸을 구획했던 문틀의 흔적이 대들보 아래 그대로 남아 있는데 네 짝의 미닫이를 설치해 방을 나누었던 모양이다. 틀에 붙은 초배지가 1988년 일간지였던 것으로 미루어 1988년 이후 문을 없앤 뒤 세 칸을 합쳐 안채로 사용해 온 듯하다.




이듬해 다섯 번째 봄이 찾아왔다. 둥근 벽시계 위치가 높아진 것 빼고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낫낫한 일상이 이어졌다. 시간의 밀도가 조금 더 짙어진 것 빼고. 공간의 농도가 조금 더 두터워진 것 빼고. 가상 바카라, 어쩌면 모든 게 달라져버렸다.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여전히 장막에 둘러싸인 남은 두 칸의 속살을 상상하며 이 작은 집과 동화되어 갔다.




과거 신문을 들추다 우연히 도시 한옥에 관한 기사를 접가상 바카라. 1929년을 기점으로 1960년대까지 도심 저변으로 확장된 대단지 주거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필자는 양산형 도시 한옥이 무분별하게 들어서는 현상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다. 기왓장이 빼곡한 시커먼 풍경을 도시 경관을 해치는 흉물로 여겼던 것이다. 획일화된 주거지를 바라보는 시선이 현재와 사뭇 다르지 않다는 점에 인류애가 밀려왔다. 다양성이 거세된 획일화된 풍경에 '닭장'이라 표현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꼭 같았다. 수평이냐 수직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


거주 문화는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라 생각한다. 다시 한번 불확실성으로 점철된 현시점에서 주거가 획일화되거나 불안정한 건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이 작은 가상 바카라 또한 지어질 당시 획일화된 주거 형태였다. 우연히 살아남아 희소성이 부여된 것일 뿐이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 또 다른 형태의 주택이 획일화된 풍경을 그리진 않을까? 그 틈에 우연히 살아남은 아파트 한 채가 오래된 집의 향수를 불러일으키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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