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아침이었다. 휘뚜루마뚜루 감은 머리를 말리려고 드라이기를 높이 쳐들고 켜는 순간 위잉~하고 돌아가는 드라이기의 요란한 소리와 함께 뭔가 시커먼 것이 내 앞으로 튀어 올라 바닥에 툭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순간 그 검은 것은 빙글빙글 돌더니 작은 다리들을 바르르 떠는 것이 아닌가.
그건 분명 바퀴슬롯사이트였다.
바퀴벌레라면 기함을 하는 나는 드라이기를 던지듯이 두고, 아들이 있는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깊이 잠든 아들을 득달같이 깨우고, 바퀴벌레를 좀 어떻게 해 보라며 징징거렸다. 한참 단잠에 곯아떨어져 있던 슬롯사이트 잠시 멍하니 앉아 있더니, 벌떡 일어나 나를 따라 조심조심 안방으로 다가갔다. 정말 화장대 앞에 뭔가 검은 것이 가만히 누워있었다. 나를 영판 닮은 슬롯사이트 방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문 끝에서 서서 그것을 골몰히 바라보더니 베란다로 가서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져왔다. 그 순간 나도 얼른 홈키파를 챙겨 들고 뒤에 붙었다. 하지만, 안방문을 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 둘은 그 문짝을 넘는 것이 무슨 사선을 넘는 일인 양 한 발짝도 통과하지 못하고 문 앞에서 엉거주춤 그것과 대치하였다.
"안 움직이는 걸 보니 죽은 걸까?"
"건드렸다가 움찔 움직이면 어떡하지?"
"일단 문 닫아두고 세스코를 부르자."
"집이 너무 오래돼서 이런 일이 생기는가 봐. 집을 부동산에 내놔야겠어. 이제 이사 갈 때가 된 거야."
나는 혼잣말처럼 이런저런 소리를 떠들어대도 슬롯사이트 대꾸가 없었다. 결국 우리는 안방문을 꼭 닫아두었고 나는 말리지도 못한 산발의 머리를 대충 고무줄로 탱탱 묶고는 얼른 출근해 버렸다.
퇴근 후, 혹시나 아들이 해결했을까 싶은 마음에 슬쩍 물어봤지만, 슬롯사이트 방문을 한 번도 열어보지 않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결국 한밤중이 되어 남편이 왔고, 그제야 우리는 함께 방문을 열어 보았다. 그 시커먼 것은 그대로 그곳에 얌전히도 누워있었다. 남편은 문 앞에서 그것을 잠시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어갔다.
"슬롯사이트가 어디 있다는 거야?"
"거~기 바로 아래에 있잖아?"
내 말에 남편은 헛웃음과 함께 그걸 주으며 말했다.
"이거? 이건 단춘데?"
그러고 보니 오전에 출근한 후 나는 내가 입고 있는 카디건의 단추 하나가 없어진 것을 발견했었다. 사라져 버린 단추 때문에 카디건 중간 부분이 뻥 뚫려 늘어진 상태의 카디건을 대충 걸친 채로 다녀야 했었다. 그런데, 그 사라진 단추가 바로 그 바퀴슬롯사이트였다니.
시꺼먼 실에 바늘을 꿰어 시꺼멓고 동그란 단추를 카디건에 달며 생각했다.
'왜 아침에는 이 평범하고 동그란 단추가 그렇게 자잘한 다리가 여러 개 달린 흉측한 바퀴벌레로 보였을까? 나는 그렇다 치고 내 아들도 똑같이 그렇게 봤다니, 누가 겁 슬롯사이트 모자 아니랄까 봐. '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나는 그래도 진짜 바퀴슬롯사이트가 나타난 게 아니어서 다행인 마음으로 한숨을 훅 쉬며 단추가 또 떨어질세라 실로 단단히 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