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 요리사
[50대 아저씨의 횟집 취업일기]
주방장 한 명이 갑자기 출근을 하지 않았다. 사전에 이야기도 없이 그만둔 거라 주방에서는 우왕좌왕하며 손님들의 주문 속도를 맞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를 만난 건 바로 어제였는데 첫 만남에서 그는 나에게 ”편하게 하세요.“ 라며 사람 좋은 미소를 보여주었는데 이렇게 빠른 작별을 하게 되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슬롯.
딱 한 달 만 일을 슬롯는 사람. 그동안 주방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의 정갈한 칼 솜씨를 보면서 언젠가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을 슬롯.
일식조리사를 채용하는 사이트에는 온갖 구인공고가 올라와 슬롯. 월급도 300만 원에서 500만 원 넘게 주는 곳도 슬롯.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인데 이쪽 분야에서는 단기간 근무하면서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일하는 소위 ‘일일 칼잡이’들이 제법 슬롯고 한다. 나 역시 며칠 동안 벌써 두 명의 실장님을 만났으니 그 말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일단 급하게 빈자리를 채워야 하니 새로운 사람을 구할 때까지만 일당 조리사를 구하기로 했단다. 오늘 만난 실장님은 인근에서 본인의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인데 요즘 경기가 어렵다 보니 자신의 가게는 직원에게 맡겨 두고 가게 운영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알바를 한다고 슬롯.
지난 20여 년 동안 주한미군에서 근무하면서 월급을 따박따박 받다 보니 상황이 이 정도일 거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슬롯. 사장님이 또 다른 가게에서 알바를 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놀라웠는데 오히려 그는 나에게 일을 하나 더 찾아보고 있다고 슬롯. 과연 그에겐 휴식이라는 것이 있기나 한 걸까?
그는 나에게 이 일을 잘 배워두면 괜찮을 거라며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실력만 있으면 칼 한 자루만으로도 어디서나 일을 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을 들을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라 생각슬롯.
새로 오신 실장님은 멋진 칼집에 자신의 칼들을 담아서 가지고 오셨는데 그 모습이 나에겐 마치 슬롯 고수처럼 보였다. 아직 내 칼도 가지지 못한 초보인 내가 알지 못하는 이름이지만 옆의 실장님들이 모여 칼을 구경하는 것을 보니 무척이나 좋은 칼인 모양이다.
때론 안정적인 상황이 세상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게 만드나 보다. 아니면 세상을 바라보는 내 감각을 무디게 하는지도 모른다. 열심히 살아가는 슬롯들의 모습을 보다 보니 어쩌면 난 지금의 편안함에 취해 그냥 허송세월을 보낸 건 아닌지도 생각해 보았다.
조만간 일식조리사 필기시험을 앞두고 있다. 설령 필기시험에 합격한다고 해도 몇 달은 학원을 다니며 실기를 준비해야 한다. 언제쯤이면 나도 슬롯을 다니는 고수 칼잡이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