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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바카라 토토 말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수학여행 잘 갔다 왔나?”

나 말고 바카라 토토가 수학여행 잘 갔다 왔는지 묻는 거다.

“어제 바카라 토토했데요.”

“배 타고 갔나?”

“인천공항에서 비행기 타고 갔데요.”

“영어 대회 잘했다 카드나?”

“언제 하는지 몰라요.”


엄마는 나한테 전화해 놓고 기껏 묻는 건 바카라 토토 근황이다. 이러니 바카라 토토와 함께 있게 되면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야 할 것 같다. 어느 주말, 내가 “할무니한테 전화해 보자”라고 해서 바카라 토토가 영상통화를 걸었다. 화면에 바카라 토토와 내 얼굴이 나타났다.


나: 내 얼굴 왜 그러냐? 너랑 비교하니까 세월의 무서운 힘이 느껴진다.

초밥: 엄마, 볼에 바람 넣어봐.

시키는 대로 했다.

초밥: 그래도 팔자주름 안 없어지네.


그때 우리 얼굴은 구석으로 밀려나고 엄마 얼굴이 전면에 등장했다. 25년, 30년 간극이 있는 삼대의 얼굴이 화면을 채웠다. 엄마와 나는 25년, 나와 바카라 토토는 30년이라는 시간의 강물이 흘렀다. 비슷한 세 명의 얼굴이 마치 한 사람이 나이 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듯했다.


나: 어무이!

초밥: 아이고, 우리 새끼 집에 왔나? 수학여행 잘 갔다 왔나? 엄마 밥 해주더냐? 뭐 먹었노?

내가 불렀는데 대답은 안 하고 바카라 토토한테만 질문을 쏟아내는 엄마.

초밥: 제육볶음이랑 김치찌개 많이 먹었어.

엄마: 그래. 엄마가 밥 해줬으이 인자 공부 해야 되겠다. 그쟈?


초밥: 할머니 화장 왜 했어? 어디가?

엄마: 예식장 갈라고 미장원에서 드라이했는데 이만 원이나 달라카는 거 있제. 원래 가는 데는 만원만 받는데. 비싸제. 그쟈?

초밥: 머리 예쁘네. 잘했어.

엄마: 인자 나가야겠다. 끊제이. 엄마 옆에서 쉬다가 공부하고 그래래이.


바카라 토토와 나는 할머니는 모든 대화가 기승전공부라며 웃었다.





지난여름, 바카라 토토가 할아버지가 용돈을 보냈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통장을 확인해 보고 내가 안 왔다고 했더니 바카라 토토는 아빠한테 받은 게 있다고 안 보내셨나 하면서 아쉬워했다.


나: 할아버지한테 말해줄까? 너 목 빼고 용돈 기다리고 있다고?

초밥: 하지 마, 하지 마, 진짜 하지 마!


기겁하는 바카라 토토가 재미있어서 놀렸는데 며칠 후, 아빠한테 전화가 왔길래 이 얘기를 꺼냈다.


“바카라 토토가 할아버지가 용돈 보냈냐고 묻던데요?”

“내가 용돈 보내준다고 했거든. 괜찮다고 하던데 그래도 보내준다고 했어. 오늘은 바쁘고 내일 엄마한테 보내라카께.”


다음날, 엄마가 계좌번호를 묻기 위해 한번, 돈을 보내고 나서 잘 들어왔냐고 확인하기 위해 또 한 번의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돈이 들어오자마자 바카라 토토 통장으로 송금했고 곧바로 답장이 왔다.


“헐, 짱이다다다다다.”

“할머니가 돈을 이체하는 방법 알려줄까? 볼펜과 메모지를 준비하고 전화를 해. 불러주는 계좌번호를 받아 써. 번호를 부르면서 세 번 확인해. 은행으로 가. 이체종이에다 숫자가 틀리지 않는지 신중하게 꼭꼭 눌러서 써. 창구 앞에 기다리다가 직원한테 종이와 돈을 내고 확인증을 받아오는 거야.”


엄마가 송금을 한 날은 유난히 더웠는데, 양산을 쓰고 은행에 가는 엄마 모습을 상상하니 가슴이 저릿해왔다. 부모님이 손녀를 대하는 걸 보면 내가 보지 못한모습이라 낯설 때가 있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로 공부가 힘들다는 손녀에게 아빠는 “급하게 마음먹지 말고 천천히 해. 일 년쯤 지나야 습관이 잡히겠지”라고 했고, 그 말을 들은 바카라 토토가 울었다고, 엄마가 전해주었다. 나중에 내가 바카라 토토한테 왜 울었냐고 물었더니 모르겠다고 그냥 눈물이 났다고 했다. 바카라 토토가 언젠가 할아버지한테 쓴 편지에는 할아버지가 자기를 사랑하는 게 느껴진다고 적혀있었다.


천천히 해.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다. 손녀 마음이 다칠까 봐 조심스럽게 말하는 아빠를 보니기분이 이상했다. 어쩌면 아빠도 내게하고 싶었던 말이었을지 모른다. 책임감 때문에 꺼내지 못했던 아빠의 진심. 뒤바카라 토토 듣게 된 말. 천천히 해. 나한테 하는 말 같다.


수학여행 재미있드나, 맛있는 거 먹었나.초밥이한테 질문을 쏟아내는엄마를 나는 물끄러미 보게 된다. 내 기억에 엄마가 내 기분을 물어본 적은 거의 없었다.팍팍한 생활 때문에 하지 못한 엄마의 진심. 뒤늦게 바카라 토토 질문. 수학여행 재미있었나. 나한테 하는 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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