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금요일 반차내고 코로나 이후 처음 목욕탕 갔다. 진짜 집중해서 두 시간이나 때 밀었다. (이정이 준 사봉 스크럽 진심 좋다.) 새로 태어난 기분으로 회전 초밥집 가서 생맥주 한잔까지 마시니 정말 천국이 따로 없었다. 이대로 집에 가기 아쉬워 근처 슬롯 머신 게임관에서 상영하는 슬롯 머신 게임를 확인했다. 30분 뒤에 상영되는 슬롯 머신 게임 하나. <류이치 사카모토 : 오퍼스
2. 시간도 너무 길지 않고 (약 100분), 평점도 좋고, 류이치 사카모토가 누군진 알고(?) 있으니… 끌렸다. 볼까 고민하는 와중에 두 명이 보라고 추천했다. 친구가 말해준 덕에, 그제서야 이 슬롯 머신 게임가 류이치 사카모토의 생전 인생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콘서트 영상이란 걸 알게됐다. ‘가서 잘게 뻔한데,,,’ 그래도 (혹은 그래서) 갔다. 목욕하고 맥주 한잔 하고 노곤노곤한 상태에 류이치 사카모토 연주 들으면서 잔다고? 완전 사치스러운 호사다!
3. 직접 보니 완전 연주 실황은 아니고 관객 없이 스튜디오에서 녹화한 연주 영상이다. 슬롯 머신 게임엔 그의 음악 인생을 아우르는 20곡의 연주가 등장한다. 오퍼스(opus)는 작품이란 뜻이라고 한다. 생전에 자신의 작품을 완벽한 연주로 기록하고 싶었던 거장의 마지막 유언같은 영상이랄까? 슬롯 머신 게임는 시종일관 그의 열중하는 표정과 손가락 하나하나를 쫓는다. 조금 졸았다(ㅋㅋ). 10분 정도. 정말이지 호사스럽다.
4. 피아노에 대해 거의 모른다. 그런 내가 처음 내 돈주고 독주회를 보러간 경험이 있다. 2019년에 포르투갈에 갔을 때다. 사실 슬롯 머신 게임가 목적은 아니었고, 건축 기행을 하던 터라 렘 쿨하스의 ‘카사 다 무지카(casa da musika)를 보는게 메인이었다. 그런데 공연장 답사라면 당연히 공연을 경험해봐야 그 진가를 아니까. 그날 Vadym Kholodenko의 베토벤과 라흐마니노프, 알렉산드르 스크랴빈의 곡을 들었다.
5. 맨 앞자리에서 땀 흘리는 피아니스트를 바라보며 느낀 것은… 피아노 슬롯 머신 게임, 어떤 종류의 예술적 행위는 굉장한 육체 노동이라는 단순한 진실이었다. 그날 적은 일기의 일부를 발췌하자면…
(기시 마사히코를 인용하며) 육체 노동은 하는 도중에 “덥다, 힘들다, 아프다, 춥다”같은 신체적인 감각을 계속 느끼는 작업이다. 고로 육체노동이란 몸을 판다기 보단 감각을 파는 행위라는 것이다. 눈을 감고 들으면 아름다운 선율만 들리지만, 눈을 뜨면 슬롯 머신 게임를 위해 고통스럽게 때로는 빙의한 듯이 집중한 슬롯 머신 게임자의 얼굴과 흘리는 땀까지 뚜렷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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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두달 전 쯤 취재차 <공포의 외인구단을 그린 이현세 화백을 만나러 간 적이 있다. 그는 44년간 창작한 만화를 AI에게 학습시켜 리메이크작을 만들고 있었다. 화백은 자신이 죽은 후에도 이현세 AI가 세상과 공명하는 것을 꿈꾼다고 했다. 그런 그도 작업할 땐 여전히 직접 연필로 만화를 그렸다. 얼마 전 본 박서보 화백의 다큐멘터리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왔다. 지난 해 향년 92세로 세상을 떠난 그는 슬롯 머신 게임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어쩔땐 손이 되게 떨려요. 떠는 대로 그대로 그리니까 상관없어요. 그걸 감추려고 하면 오히려 더 이상해지는거야”
9.“슬롯 머신 게임 마지막 작품은 미완성이다. 그들은 죽기 직전까지 쓰기 때문이다.”어디서 본 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이 문장이 떠올랐다. (위화의 책이었던 것 같다.) 슬롯 머신 게임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작업할 뿐이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