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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카지노 사이트회식과 연암 박지원

설야멱을 즐긴 요섹남 선비 이야기

*이 글은 법무사협회 사보 1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정치 혼란에 대형참사까지 겹치면서 연말연시가 말 그대로 흉흉하다. 하지만 한 해가 끝나고 시작되는 시기인만큼 소중한 사람들과 만나 서로 위로를 주고받아보면 어떨까.


모처럼 회포를 풀 때 카지노 사이트회식은 국롤과도 같다.“인생은 카지노 사이트서 카지노 사이트”, “기분이 저기압일 땐 카지노 사이트 앞” 등 같은 말이 있을 만큼 한국인의 카지노 사이트사랑은 각별하다. 이렇게 카지노 사이트를 구워 먹으며 친목을 다지는 풍속은 무려 삼국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눈이 내리는 날 친구와 화로를 마주하고 카지노 사이트를 구우며 ‘난로회’를 했다. 방안이 연기로 후끈하고 파, 마늘냄새와 카지노 사이트 굽는 냄새가 몸에 밴다. 창문가로 가 부채를 부치며 맑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니 신선 사는 곳이 여기서 멀지 않다”


맛있는 냄새로 가득한 따스한 공기, 시원한 겨울 바람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이 문장은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의 ‘만휴당기(晩休堂記)’에 나온다. ‘난로회(暖爐會)’는 서울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풍습으로 ‘동국세시기’에도 언급된다. 추운 겨울날 선비들은 숯불에 양념한 카지노 사이트를 구워 먹으며 세상 이야기를 나누고 시를 읊으며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카지노 사이트난로회를 묘사한 풍속도

신라시대에도 ‘카지노 사이트 회식’이 존재했다. 조선 후기 문인 조수삼은 ‘추재집(秋齋集)’을 통해 “신라에서 새해 첫날이면 임금 앞에서 단향회(檀香會)을 열고, 불을 피워 설야멱(雪夜覓)을 먹는다”고 언급했다. 여기서 단향은 박달나무로 만든 화로를 가리키고, 설야멱은 대나무에 끼운 쇠카지노 사이트 꼬치라는 뜻이다. “눈 내리는 날 밤에 구워먹는 카지노 사이트”라니 듣기만 해도 낭만적이다.


조선 후기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를 보면 설야멱 레시피도 나온다. “넓고 길게 저민 등심살에 잔칼집을 내고 꼬치에 뀐다. 숯불을 피운 후 재를 얇게 덮고 기름장에 버무린 카지노 사이트를 굽는다. 중간에 카지노 사이트를 냉수에 담갔다 꺼내 다시 굽기를 3번 반복한다. 생강과 후추만 발라서 구워야 한다”고 묘사했다. 그런가 하면 구운 카지노 사이트를 눈 위에 올려 식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복잡한 조리법을 사용한 이유는 화로만으로 불조절이 어려워서였을 것이다. 자칫 양념이 타버리지 않도록 재를 덮어 화력을 약하게 했다. 구운 카지노 사이트를 냉수에 담그면 카지노 사이트가 수축되면서 육즙을 가두고 씹는 맛을 좋아지게 만든다. 이후 석쇠와 번철이 보급되면서 꼬치를 사용할 필요가 없어졌는데 박지원이 먹었던 카지노 사이트는 철판구이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양념한 카지노 사이트를 구워 먹는 요리의 원형은 고조선 시대 맥적(貊炙)으로 알려졌다. 맥적은 중국에까지 전해져 유행했다고 한다. 진나라 사서 ‘수신기’를 보면 “귀족과 부자들이 호상맥반(胡床貊槃)을 즐겨 사용하고 강자맥적(羌煮貊炙)을 즐겨 먹는다”는 기록이 있다. 강(羌)은 티베트 계열의 소수민족, 맥(貊)은 예부여와 고구려인을 말한다.

카지노 사이트정조지에 묘사된 설야멱 재현

맥족이 사용하던 그릇이 맥반, 구운 카지노 사이트 요리가 맥적으로 ‘맥’이라는 명칭 자체가 카지노 사이트를 즐기는 민족이라는 뜻이다. 고려시대 원 간섭기에는 탐라의 쇠카지노 사이트를 원나라에 진상했고, 카지노 사이트 굽는 요리사도 고려인이었다. 이쯤 되면 한민족의 DNA에는 유별난 카지노 사이트 사랑 유전자가 전해져 내려오는게 아닌가 싶다.


한반도에서 카지노 사이트 요리가 특히 발달한 지역으로는 개성시가 있다. 고려왕조 수도이며 상업이 발달한 개성은 예로부터 호화로운 음식문화를 누려왔다. 박지원이 ‘만휴당기’에서 난로회를 가진 장소가 바로 개성으로, 이 자리에는 박지원의 절친인 개성 유수가 함께했다고 한다. 잠시 일상을 벗어나 친우와 카지노 사이트, 술을 즐기는 이때가 그에게는 힐링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명문가 반남 박씨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박지원은 일찌감치 과거를 포기하고 평생을 야인으로 살았다. 늘그막에 음서를 통해 안의(함양군) 현감으로 가게 된 그에게는 자녀들이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가족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박지원은 부인 이씨가 사망한 후에도 재혼을 하거나 첩을 들이지 않았다. 부임지에서 그는 서울의 자녀들에게 편지 한통을 보낸다.


“고추장 작은 단지를 하나 보내니, 사랑방에 두고 밥 먹을 때마다 먹으면 좋을 거다. 내가 직접 담근 것인데 아직 잘 익지는 않았다”

카지노 사이트연암 박지원


50대 가장이 직접 메주를 으깨고, 찹쌀밥을 짓고, 고춧가루로 양손을 발갛게 물들이며 장을 담그다니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명분보다 실리를 중시한 실학자의 면모를 볼 수 있는 동시에, 자상한 아버지 박지원의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일화다.


고추장 외에 그는 육포와 약고추장 같은 반찬거리를 분가해 살고 있는 자식들에게 보냈다. 장남 종의가 감사 인사도 없이 막 태어난 아들 자랑만 늘어놓자 박지원은 “이전에 보낸 쇠카지노 사이트 장볶이는 받아서 아침저녁으로 먹고 있니? 왜 한번도 좋은지 어떤지 말이 없니? 난 그게 포첩(육포)이나 장조림보다 더 좋은 것 같더라”며 단단히 삐친 답장을 보낸다.


‘허생전’, ‘호질’을 통해 날카로운 풍자를 보여줬던 박지원도 뜻밖에 자식을 짝사랑하는 ‘보통 아버지’였던 것 같다. 친우와 한겨울 구운 카지노 사이트를 즐겼다는 일화에서는 인간적인 소탈함이 느껴진다. 새해를 맞아, 소중한 이들과 갖는 카지노 사이트 회동은 예나 지금이나 그 온기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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