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 바카라 게임
비잔틴 건축의 원형‘아야 바카라 게임’
튀르키예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경계로 아시아와 유럽 모두에 걸쳐있는 나라이다. 튀르키예의 최대 도시 이스탄불은 이러한 유럽과 아시아를 다리 하나를 경계로 한 몸에 담고 있는 역사상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이다. 이슬람을 국교로 하고 있는 튀르키예의 이스탄불에는 곳곳마다 첨탑(미나렛)들과 크고 작은 돔(dome)들이 중첩되어있는 이슬람 사원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의 이슬람 사원들이 만들어지는데 기초가 되었던 건물이 ‘아야 바카라 게임’이다. 현재는 이슬람 사원(모스크)로 사용하고 있는 이 건물은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을 지닌 동로마 교회의 총 본산 교회당이었다.
이스탄불은 기원전 660년경부터 서기 330년 로마의 바카라 게임누스 황제가 동로마 제국의 수도로 삼기 전까지는 ‘비잔티움’으로 불리워졌다. 바카라 게임누스 황제는 이 도시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을 따서 바카라 게임노플로 바꾸었다. 그리고 서기 360년 바카라 게임누스 2세때 이 성당을 처음 건립하었다. 그러나 404년과 532년의 2차에 걸친 화재로 큰 피해를 입어 현재의 모습에서 처음의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 특히 두 번째 재건 때는 아름다움이 극에 달하여, 재건을 명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537년의 헌당식 날 “오! 솔로몬이여, 나, 그대에게 이겼노라!”라고 외쳤다고 전해진다. 사각형 평면위에 직경이 33m에 달하는 큰 원형의 돔을 얹는 방식(펜덴티브 돔)과 이 큰 돔을 지지하는 작은 돔들을 중첩시키는 건축양식은 이 도시의 옛 이름인 비잔티움에서 따와 ‘비잔틴 양식’으로 불리우게 된다.
아야 바카라 게임는 1453년 오스만 터키의 술탄 메흐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점거하기 직전까지 동로마 교회이자 그리스 정교회의 총본산이었다.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메흐메드 2세는아야 바카라 게임 건물이 너무 훌륭하여 파괴를 막는 것은 물론 아야 바카라 게임를 이슬람 예배당인 모스크로 사용하기로 한다. 돔으로 덮여있는 크고 넓은 공간이 모스크로 사용하기에 매우적합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슬람에서는 우상숭배를 엄격히 금하기 때문에 모자이크로 제작된 기독교의 그림들을 모두 제거해야만 했다. 그래서 모든 모자이크화를 흰색 회반죽으로 모두 덮어 그림들을 가리고 그 위에 코란의 글자를 써넣었다. 또한 메카 방향을 나타내는 아치형 벽관(nich)인 미흐랍(mihrab)을 만들고 건물의 각 모퉁이 4곳에 나팔수가 꼭대기에 올라가서 뿔나팔을 불어 기도 시각을 알리는 기능인 첨탑(미나렛)을 세워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아야 바카라 게임를 모스크로 사용했던 오스만 터키가 물러가고 1923년 터어키공화국이 수립되었을 때 유럽 각국은 아야 바카라 게임의 반환과 종교적 복원을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이에 터키 정부는 1935년 이곳을 박물관으로 운영하기로 결정하고 기독교이든 이슬람이든 그곳에서의 종교적 행위를 금지시켰다. 그 이후 아야 바카라 게임는 이스탄불 역사지구 세계문화유산의 중심시설로 2019년까지 박물관으로서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명소로 튀르키예 관광의 중심시설로 자리잡아 왔다.
그러나 이 건물을 모스크로 환원하자는 튀르키예의 끊임없는 여론이 제기되어 왔다. 그리하여 2020년 다시 박물관에서 모스크로 환원되어 현재는 '하기아 바카라 게임 그랜드 모스크(The Hagia Sophia Grand Mosque)'라는 명칭으로 불리우고 있다. 기독교와 서구의 반발에 대하여 튀르키예 정부는 모스크라도 과거 그리스 정교회 성당 당시의 유산들이 훼손되지 않고 누구나 출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단지 무슬림들의 기도 시간에는 커튼을 쳐서 모자이크를 가리도록 하되 모자이크는 보존하도록 하였다. 또한 대리석으로 되어 있던 바닥은 다른 모스크들처럼 무슬림들의 예배를 위해 카펫을 깔아 놓았다.
이에 따라 이제는 아야 바카라 게임를 방문하는 외국 관광객들은 1인당 입장료 25유로(4만원)에 무슬림이 아닌 경우 2층만 입장할 수 있다 하니 나로서는 박물관 시절 건물 이곳 저곳을 두루 살펴 볼 수 있었던 것이 자못 다행스러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