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바카라 사형집행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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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얼마 전 작성한/@sk0279/1820의 본문 중 가상 바카라입니다.
가상 바카라 리뷰의 일부로 남기기엔 추구하는 내용과 장르가 너무 달라 수정 후 옮깁니다.
타인들과 같은 분량의 시간을 안고 살고 있지만 눈이 바쁠 적엔 한 달에 15편 넘는 영화를 감상한 적도 있었다. 감상한 후에는 대부분 기록으로 남겼다. 그렇게 살지 않은지 한 달이 넘어간다. 아니 두 달. 시간을 내어 본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는 동안 다른 선택 대신 영화를 보는 선택을 했다. 휴대폰만 있으면 대부분 가능했다. OTT라는 애벌레가 기어가는 모양의 세 글자가 있지만 굳이 저 플랫폼 때문에 많은 감상으로 이어졌다고 말하긴 어렵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고 난 그들 중 조금 더 많은 영화를 보고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경쟁이 아니고 보상이 없으니 비교는 의미 없지만 볼수록 나는 전과 다른 사람이었다. 본 사람과 안 본 사람, 보고 지나가는 사람과 보고 기록하는 사람, 이 격차를 체감하고 있었다. 지금은 달라졌다. 시간이 지나갈 때 영화를 선택하기 어려워졌다. 더 우선순위인 것들이 생겼다. 생명과 자아와 연결된 것들이 위기에 처해 있었다. 더 많은 시간을 쏟아 사태를 파악하고 대처해야 했다. 계엄과 내란으로 시대 붕괴의 신호를 모두가 보았고 막아야 했다. 뉴스를 파악해야 했고 내 위치와 동선, 도주로를 점검해야 했다. 소스라칠 정도의 숨은 이야기들이 드러나고 있었다. 학살은 이론이 아닌 계획이었다. 거리를 걷다가 총에 맞아 죽을 수 있었다. 이유도 모른 채 맞다가 죽을 수 있었다. 끌려가 이유도 모른 채 죽을 수 있었다. 사고가 아니었다. 철저한 계획에 의한 살해였다. 밧줄에 묶여 거짓말을 강요당하고 거부하면 고문당하다 죽을 수 있었다. 시체는 아무 데나 버려질 수 있었다. 상상이면 좋겠는데, 과거의 이 나라 국민들이 더 처절하게 당한 사례가 기록으로 넘쳐 나서 알고 있다. 나는 우리는 군복을 입은 자국민에 의해 총칼과 탱크로 죽을 수 있었다. 지금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사라지지 않았다. 해당 계획을 지시하고 관여한 모두 처벌되어 파멸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성공할 가능성을 높여서. 이러니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이러니 영화에 빠질 수 없다. 이러니 여유가 생길 리 없다.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아니다. 내 주변도 아니다. 우리는 아니다. 그래서 나는 똑같은 빈도로 영화를 볼 수 없다. 글을 쓸 수 없다. 다른 데 시간을 쓸 수 없다. 대학살을 실행하려 한 가상 바카라 사형집행 전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