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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롯사이트 지니 곳

슬롯사이트 지니 묻던 날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경사는 몰라도 조사는 정말 웬만하면 고민 않고 챙긴다는 원칙을 지녀왔다. 사회에서의 첫 조사였던 옆 팀 부장님 장모상에 가서 음식을 날랐던 기억(그런 시절이 있었다)이 강렬한 탓인지, 여름에 함께 인턴을 한 친구가 같은 해 겨울 음주 운전 뺑소니로 허망하게 떠난 슬롯사이트 지니, 빈소를 메우기엔 너무도 새파란 조문객들을 보며 받은 충격이 남은 때문인지, 입사 2년 차에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빈소에 몇 시간을 마다않고 운전해 찾아와 준 선배, 동기들에 대한 고마움이 짙어서였을지, 아무튼 살면서 경험한 '남은 슬롯사이트 지니'에는 누구라도 없는 것보다는 하나라도 더 있는 편이 나았기에.


큰외삼촌이 슬롯사이트 지니신 것은 추석을 이틀 앞두고서였다. “시집 안 보낼 거면 느그 딸 둘 다 내쫓아버려라!”시던, 외할아버지를 그대로 빼닮은 형형한 눈초리와 꼿꼿한 모습이 선하다. 직전 주말 가까스로 삼촌의 마지막을 뵙고 온 엄마는, 잔뜩 쪼그라든 모습으로 힘없이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당신의 오빠를 보고 사람이 어찌 이리 완전히 달라질 수 있냐며 가슴을 쳤었다. 처음 삼촌의 암 말기 소식을 들은 것이 지난여름 나의 물혹 수술 하루 전날이었으니 불과 3개월 남짓 흘렀다. 그동안 나의 몸은 사는 방향으로 움직여왔는데 삼촌의 생명은 그대로 꺼져 들었다는 것에 현실감이 없다. 결국 생의 마지막을 닫는 것은 육신이다. 너희 삼촌 가셨다, 전화기 너머 엄마의 목소리가 버석거렸다.


연휴를 앞두고 빡빡했던 일정들을 정신없이 정리하고, 빨래를 하고 밥을 챙겨 먹고 더운 밤공기 속을 걷고 와 밀린 업무를 한다. 이튿날 새벽부터 모레 밤까지, 한 세상을 살다 가신 엄마의 오빠를 보내드리고 온다는 현실을 앞두고 덤덤히 생을 계속한다. 아주 어릴 때 돌아가셨다는, 엄마의 가장 큰 오빠를 빼면 부모의 형제 중 처음으로 맞는 죽음이다. 나는 가서 상주와 인사를 해야 하는 객인 걸까, 상복을 입고 손을 맞아야 하는 주인 걸까 헷갈려 하며, 집안 어른의 부의금은 어떻게 해야 맞는가를 검색해 보며, 네 가족의 오고 갈 교통편과 누울 슬롯사이트 지니를 알아보며, 슬픔조차 맘 놓고 끼어들 틈이 없는 생의 질김에 무력과 안도를 동시에 느낀다.


십수 년 만에 본 사촌 오빠들은 상주 완장을 차고 벌겋게 부은 눈으로 ‘객’인 우리를 맞았다. 엄마가 여섯째, 여덟 남매와 그 배우자와 자식들과 그들의 자식들까지 모두 모여 앉으니 빈소 입구의 기다란 테이블 두 개가 꽉 찼다. 꼬박 한나절을 오간 이야기들은 그때 그 시절에 대한 회상과, 결혼 안 한 자식들에 대한 잔소리와, 그 부모들의 건강 걱정 같은, 별스럽지 않은 것들이었다. 상주들은 종일 울다가 웃다가 했다. 오는 손님 한 명 한 명 때문에 울고, 둘러앉아 덕분에 잠깐잠깐 웃었다. 여기저기서 서류와 주문서에 사인할 사람을 찾으면 뛰어가 할 일을 하느라 슬픔은 자꾸만 뚝 끊어졌다. 이래서 옛 어른들이 상갓집 한슬롯사이트 지니서 밤새 고스톱을 쳤던 걸까. 누군가가 늦게 오고, 누군가는 먼저 갔다. 조용한가 싶다가, 금세 벅적하기도 했다. 누군가의 마지막을 지키는 슬롯사이트 지니, 그곳의 모습은 자체로 생이었다.


삼촌은 말 그대로 ‘슬롯사이트 지니 곳’에 몸을 뉘었다. 불과 작년, 갑자기 무슨 바람이었을지 대대로 흩어져 있던 조상님들의 묘를 한 곳의 선산에다 이장하는 큰일을 하시면서, 한편에 봐두셨던 당신의 자리였다. 역대급 더운 추석이라더니, 장례지도사의 느릿한 추도사가 흐르는 동안 내내 뒤통수에 와 박힌 햇볕은 온 가족의 땀을 흥건히 뺐다. 인부들이 땅을 고르는 동안, 머리에 까치집을 지은 큰 상주는 땀 반 눈물 반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문지르며 근처 갈비탕 집에 전화를 하고, 내내 의젓하게 영정을 들었던 그 아들은 마침내 새카만 재킷에서 해방되어 심드렁한 중학생으로 돌아갔다. “OO이는 잘 지낸당가?” “아따, OO이는 죽었자네.” “아, 그란가.” 돌아 나오는 동네 어귀, 옛 동네 친구의 안부를 덤덤히 묻고 답하는 나이 든 남매들의 머리 위로 타는 듯한 햇볕이 쫓아왔다.


갈비탕이 맛이 있네 없네, 작은 상주가 과일을 이쁘게 깎았네 아니네,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 시각을 바꾸네 마네, 조금 전 가족을 묻고 온 가족들은 또다시 별스럽지 않은 사는 이야기를 했다. “고생혔소!” “다음에 봐!” 나눈 인사 뒤로, 아마 다들 알고 있었을 것이다. 또다시 이렇게 모두가 모이는 ‘다음’이 있다면, 그것은 또 다른 가족을 보내는 자리가 될지 모른다는 걸. 그럼에도 돌아선 얼굴들에 왠지 모를 안도가 묻어 있다면, 그것은 그날 그 자리에도 별스럽지 않은 삶의 이야기를 나누어 줄, 나와 함께 울다가 웃다가 하며 가신 분의 옛날을 추억해 줄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안심 때문일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슬롯사이트 지니(陽地)가 되어주는 한, 생은 타는 듯 타지 않고 계속된다.





이 글은<월간에세이 2025년 1월 호'에세이 초대석'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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