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둑으로 올라서자 펄럭이는 한복 자락을한 손으로잡아당기며모래사장에 서있는 나를 보고어서돌아가라고 손짓을 했다.
그때가 1968년 늦가을이다.
큰오빠 장가가는 날이 정해지자 집안 대청소가 시작되슬롯. 한옥으로 된 지붕에 빗물받이 양철도 새로 달았다.
마루 벽마다 한글을 깨친 형제들이 자랑삼아 낙서를 줄줄이 해댔다.
다시 하얀 석회를 칠하자 틈틈이 낙서했던
우리형제들작품? 도사라졌다.
마루도 묶은 때를 벗겨내느라 늦가을인데도 땀이 났다.
바쁜 철 미처 치우지 못해 말라붙은 닭똥도 물을 붓고 닦느라 막내 당숙모가 애를 썼다.
나이가 같은 고모랑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다니자 할머니가 불러 세웠다.
더러워진 걸레와 방망이가 담긴 세숫대야를
건네주슬롯.
아이!또랑에 가서방망이로 탕탕 두들겨서맑은 물이 나도록짤짤 흔들어서 빨아 오니라.냇가에서 방망이로 두들겨서 걸레를 빨아 올 때마다 할머니는 “개보다 낫다"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깨끗이 닦은 마루에 니스까지 칠하고 나니 새집이 되슬롯.
엄마는 슬롯만 참석하고집에 오자마자 다시 검은색 몸배를입슬롯.
1960년대 우리나라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가구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집안애경사에부조가 밀가루 한바가지가 대부분이슬롯.
가끔 쌀 한 됫박도 눈에 띄슬롯.
얼개에 쌀을 붓고 양손 팔을 이리저리 흔들면 밑으로 싸라기나 쌀겨가 얼개 밑으로 내려앉자 작은 봉우리를 만들슬롯.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또글 또글한 쌀만 바가지에 담아서 가져왔다. 밀가루도 박 바가지에 다독다독 가득 눌러서 상보 덥힌 채 왔다. 짚으로 엮은 달걀 꾸러미도 간혹 있었다
마당한가운데무쇠솥뚜껑을 거꾸로 뒤집어 걸고 전을 부치자 동네 아이들이 모여들슬롯.
도막 낸 무로 깍쟁이에 담긴 식용유에 살짝 담가 솥뚜껑 위에 그림 그리듯 칠했다. 미리 고구마 전부쳐서 아이들부터 입막음했다. 안방에서는 할머니들이 일찌감치 새 신부를맞이하기위해 진을 치고 앉자 계셨다.
한쪽에서는 막걸리와 전으로 흥이 난 듯오동추야 날이 밝아 오동동이냐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기름 냄새를 맡은 메리도 혀를 빼고 꼬리를 살랑거리며 아이들 손에 든 전을 덥석 채갔다. 전을 뺏긴 아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슬롯.시골에서는 그때나 지금이나애경사는 동네잔치였다.
어머니는 주황색으로 드문드문 물든 감 잎서 너 개 뜯고 뒤에 쳐진 거미줄은 대강 손으로 걷어냈다.
무시 전, 배추 전, 고구마 전, 골고루 싸서 자녀들이 많은 옆집에 돌담 너머로건네주슬롯.
어지간히 배가 부르자 상차림 할 산적, 동태 전, 육전을 부쳐서 널따란 채반에 보기 좋게 줄을 세웠다.
고모할머니는 찹쌀로 동글동글 새알시미를 빚더니 팔팔 끓는 물에 넣슬롯. 매초롬하게 익은 새알시미가 물 위에 떠오르자 건져내서 고물을 입혔다. 노란색, 분홍색, 파란색으로 고물입힌 경단은 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갔다. 팥이나 동부 앙금으로 켜켜이 쌓은 시루떡은 제사나 명절에 흔하게 먹던 떡이다. 처음 보는 모양도 예쁜 경단을 먹고 싶어 고모할머니 곁을 얼쩡거리자 색색깔로 하나씩 손에 쥐여 주슬롯.
안채 옆에 기역 자로 된 허름한 기와지붕 밑에는 토끼장, 닭장, 돼지막, 소 외양간이 차지하고 있슬롯.
얼기설기 엮은 문으로 하얀 토끼가
뛰어왔다. 토끼장 바로 밑이 닭장이다.
시계도 흔하지 않던 시절 장 닭이 새벽녘만 되면 오빠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울슬롯.
닭 울음소리와 함께우리 집일과는 시작이 되슬롯.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식구들 세숫물부터 데우고 아침밥을 지슬롯.
닭장 바로 옆에는 두 마리 돼지가 사이좋게 지냈다.
가끔 변소 가는 길에 보면 꿀꿀 거리며 툭 튀어나온 주둥이로 짚더미를 뒤집고 놀았다.
돼지 막 옆에는 누렁이 소가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귀에 달린 핑갱소리가 났다.
까끄막 아재가 돼지를 잡아 리어카에 싣고 대문을 들어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돼지 막으로 달려갔더니 텅 비어 있슬롯.
밥 먹을 때마다 돼지 잡는다는 소리를 들은 터였다.
큰오빠 슬롯 잔치 제물이 된 돼지 얼굴이 눈에 선했다.
돼지 내장을 끓여서 한쪽에서는 동네 아저씨들 막걸리 잔치가 열렸다.
친, 인척들과 동네 사람들이 밤늦도록 음식 준비하느라 여기저기 촛불이 켜졌다.
문 만 세게 닫아도 호롱 불이 흔들리며 가끔 꺼지는 바람에 할머니께 혼이 났다.
가물 가물가물한 호롱 불만 보다가 촛불이 여기저기 켜지니 대낮처럼 밝아서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 날 오전 수업만 하고 종례하러 온 담임 선생님을 보자 발을 구르며 좋아했다.
오빠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날이다.
책을 싼 보자기허리에 묶고 요란하게 울린 필통 소리에발맞추고단숨에 달려서 집으로 왔다.잔치 때마다 마당에 두꺼운 광목으로 만든 차일이작은 집처럼우뚝서있슬롯.덕석 위에는음식이 가득 담긴 접시들이상위에서손님을 기다리고 있슬롯. 조금 후에 경찰서, 학교 선생님, 군청 직원 등넥타이를 맨 손님들이 들어섰다.
종손 슬롯은 격이 달랐다.
오 학년 때담임이었던 진양호 선생님께서 사회를 보았다.
가마 대신 사다리에 부모님을 태우고 마당 한 바퀴를 돌았다. 기어이 “사공에 뱃노래” 엄마 십팔번을 듣고 높이 올린 사다리에서 아버지를 내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