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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수원집 딸 수정이

7. 슬롯의 여자친구


슬롯;수정이?과수원집 딸 그 수정이?'

어머님은 재차 확인하며 물으셨다.


그의 여자친구로 시댁에 처음인사를 드리러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우리 집은 오랫동안 과수원을 했고, 나는시골 동네에서'과수원집 딸 수정이'로 통했다.


우리 집과 남편 집은가까운 동네여서 서로 알고 있는사이였다. 그 과수원집 딸수정이가 막내슬롯의 여자친구로 인사를 오자, 많이놀라시는 것 같았. 슬롯;수정이가 언제 이렇게 컸지? 몰라보겠네~슬롯;하시며,어릴 적나를기억하고 계셨다.

그날은 어머님 생신이었고 더운 한여름이었다. 수박 한 통을 들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방문한 그의 집에는 친척들과 손님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인사를 드리며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모두가 반겨주셨지만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이런 날 인사 오라고 한 남편, 그때의 남자 친구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사실, 오란다고 좋아서 간 건 나였지만.


인사를 다녀오고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아버님이 더 많이 좋아하셨다고 한다. 역시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님인가 보다.


그렇게수줍고 떨리는 마음으로시댁에 인사를 갔었다.






남편의 일주기를 보내고 그럭저럭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던 5월의 어느 날, 둘째 슬롯이 나에게 물어왔다.


슬롯;엄마, 나 지금 만나고 있는 여자친구 만나볼래?슬롯;

슬롯;진짜? 당연히 좋지!슬롯;


나는 눈이 동그래지며답했다.

여자친구가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인사를 시킨다고 하니 기분이 좋았다.

벌써부터 어떤 아가씨일지궁금해졌다.

슬롯은,슬롯;엄마가 괜찮은지 잘 봐줘ㅎㅎ슬롯; 라며 웃음 지었다.


슬롯의 여자친구와 만날 생각을 하니,20대 철부지 시절시댁에 인사를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어머님도 지금의 내 마음과 같았을까'라는 생각이 들며 세월의 흐름이 실감 났다.


드디어 디데이, 슬롯은 서울에서 내려오는 여자친구를05하기 위해터미널로 가고, 나는만나기로 한 식당에서먼저기다리고 있었다.식당창가에앉아궁금한마음에 자꾸문 쪽바라보았다.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문이 열리며슬롯과 함께 들어오는 아가씨가 보였다.


어쩜!한눈에 맘에 쏙 들었다.


맘에 안 들어도든다고 할 참이었다. 멀리서 인사를 왔고, 슬롯이 좋아하는 여자친구인데무조건반겨주리라 마음먹고 있었다.그런데, 꽃다발을 들고 환하게 웃으며 들어오는 그 아가씨가, 말 한마디 해보지 않았는데도 내 맘에들어왔다.


슬롯;안녕하세요. 어머님슬롯;

슬롯;반가워요. 이렇게 와줘서~ㅎㅎㅎ슬롯;

슬롯;네~ 어머님 저도요. ㅎㅎ슬롯;


슬롯의 여자친구는 수줍은 미소로꽃다발을 건넸고, 그 꽃다발을 받아 들며웃음이 절로 나왔다.

우리는처음 만났지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를 이어가며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 다음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여자친구를 배웅하고 돌아온 슬롯에게 말했다.

슬롯;엄마는 맘에 드니,빨리결혼해라. ㅎㅎ슬롯;

슬롯;ㅎㅎㅎ0408들 결혼하면 엄마 심심해서 어떡하려고 그래.슬롯;

슬롯;엄마 걱정은 하지 말고, 네가 좋은 짝 만나 결혼하는 게 엄마는 더 큰 행복이야~슬롯;

슬롯도 나도 기분좋은 이야기를 나누며 한참을 웃었다.


첫 만남에 결혼을 반길 정도로 그 아이가 예뻐 보였다.예의 바르고 참 싹싹한 아가씨였다.

특히,우리 슬롯을 바라보는눈빛, 행동 하나하나에사랑이 듬뿍 묻어나고 있었다.

더 이상맘에 들기도 힘들 만큼 흡족했고, 그날 슬롯의 여자친구를 며느릿감으로 점찍었다.


슬롯삶의 모든 순간이 꽃처럼 피어나길 (그림. 김수정)


06아마도좋아서 여기저기 자랑하느라 바빴을 거다. 남편마음에도 쏙 들만한 며느릿감이었다.


남편은가끔아들들에게 슬롯;엄마보다 예쁜 여자 데려올 수 있어? 라며,를 비행기에태우했다.

그럼 아들들이 슬롯;와.. 너무 어려운데? 우리가 지금까지 열심히 찾아봤는데 엄마만큼 예쁜 사람도 없더라고, 아빠는 진짜 엄마 어떻게 만난 거야! 슬롯;라며 너스레를 떨었다.그렇게꿍짝이 잘 맞는 부자의 대화를 들으며내 웃음소리는 커졌다.


의 바람대로 예쁜 며느릿감이 인사를 왔는데,정작그는그 아이를반겨줄 수는 생각에한편으로는 마음이 헛헛했다.






두 아이의만남결혼까지 잘 이어졌다.

양가 상견례를 하고 결혼식 날짜가 정해졌다.

명동성당에서 결혼식 날짜를 받고, 이게 정말 꿈인지 싶었다.


슬롯의 여자친구는'861'라는 본명으로 세례도받았다.가족 모두 진심으로 같이 기뻐했고이 모든 과정이 나에게는 기적과도 같았다.


23년 11월,명동성당에서결혼식은 정말 아름다웠다.


편의친구 신부님흔쾌히주례맡아 주셨고,혼주석에는 큰슬롯이 아빠를 대신해 든든하게 지켜주었다.결혼식은,찾아와 주신 많은 분의 축하 속에서 성대하면서도 차분하게 진행되었다.


무엇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남편의 빈자리지만,새 식구를 맞이하고 슬롯이 한 가정을 이루는 모습을 지켜보며 남편의 몫까지 두 배로 행복하고 뿌듯했다.


슬롯;여보, 당신 슬롯 멋있지? 누구보다당신이 가장많이 기뻐하고 축하해주고 있다는 것 알고 있어.고마워요슬롯;



P.S

슬롯 부부는 행복한 가정을 잘 꾸려가고 있어요.

그사이 예쁜 손자도 태어났답니다.

이제 곧 백일이 되어갑니다.

과수원집 딸 수정이가 할머니가 되었어요.^^

독자 여러분께기쁜소식을 전합니다.


Merry~ Christmas.~^^

슬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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