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통과하자 낯 선 두 남자가 보였다. 둘 다 20대가량의 동양인이었고 180cm의 큰 키에 호리호리한 체형을 갖추고 온라인 슬롯.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온라인 슬롯19구역의 오타료헤이라고 합니다. 이곳의 부위원장이며, 옆에 계신 분은 TSP라고 하며 이곳의 위원장입니다.”
온라인 슬롯료헤이라는 남자는 부드러운 파마 머리에 양 볼에 큼직한 보조개가 들어간 자상한 인상이 돋보였다. TSP라는 남자는 어깨까지 내려온 검은 장발에,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고 입을 다물고 있어서 표정을 읽을 수 없었지만, 검은 선글라스를 통해 보이는 눈동자는 온라인 슬롯의 머리와 발끝을 이미 다 훑고 있었다.
“이곳은 플래닛A의 남단에 위치한 재생자 거주지 온라인 슬롯19 구역입니다. SOP는 South of Planet 의 줄임 말이죠.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 하니 가운을 걸치고 신발을 신으세요.”
그러고 보니 온라인 슬롯는 실오라기 걸치지 않은 나체였고, 온라인 슬롯 앞의 두 사람, 온라인 슬롯료헤이와 TSP는 몸에 맞는 파란색 수트와 검은색 구두를 신고 있었다.
“잠깐만…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조금 생각할 시간 좀 주세요.”
TSP는 고개를 끄덕이며, 온라인 슬롯의 청을 받아들였다. 온라인 슬롯는 눈을 들어 동서남북의 주위와 하늘과 땅을 바라봤다. 넓은 평지에 마른 흙 위로 잔 풀들이 땅 위에 삐어져 나왔고, 아주 멀리에는 집들과 건물들이 조그맣게 보였다. 하늘에는 6개의 태양이 빛나고 있었지만, 에덴의 벽 안에서 봤을 때 보다 밝기의 정도가 약해져 있는 것으로 보아, 낮이 물러나고 어둠이 찾아오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생이 되어 안내자들과 재생자들을 만나고, 박성호의 꾐에 속여 괴수새들에게 쫓겨 에덴의 벽을 간신히 통과했다. 벽을 통과하자 나타난 두 낯선 남자는 이곳이 온라인 슬롯19 구역이라고 한다. 어떤 드라마도 이렇게 빠르고 극적인 전개는 없었다. 지금까지 닥친 상황은 갑작스러운 전개 때문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끌려 다녔지만, 지금부터는 마음을 가다듬고 상황을 파악한 뒤 움직이고 싶었다. 먼저 앞의 낯선 두 사람에 대한 확인이 필요했다.
“제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죠? 그리고 당신들의 정체는 뭐죠?”
“에덴의 벽에서 안내자들이 설명을 하지 않았나 보군요. 헤헤헤. 우리가 당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이유는, 이곳에 들어올 예정의 재생자들의 사진과 이름이 실린 리스트를, 후손들의 대리인들로부터 미리 제공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와 TSP는 온라인 슬롯19 구역의 거주자이며, 우리도 오타씨처럼 재생자입니다.”
처음 보는 두 사람은 상대를 해칠 만한 공격성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만일을 대비하기 위해서 낯선 사람에 대해서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에덴의 벽에서 박성호를 무턱대고 믿어 버리는 바람에 수많은 재생자들이 괴수새들에게 잡혀간 것을 생각하면, 후회가 막심했기 때문이었다. 온라인 슬롯는 먼저 두 사람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온몸이 점점 달달 달아오르고, 손에 땀이 나고, 발이 뜨끔 뜨끔 해지고 있었다.
“온라인 슬롯씨, 시간이 없으니 일단 이 옷부터 입으세요. 빨리 마을로 들어가야 합니다.”
온라인 슬롯료헤이는 몸의 일부분이 불편한 듯, 애써 고통을 참으며 온라인 슬롯를 재촉했다. 옆의 TSP도 힘에 겨운지, 이마에 땀방울들이 송골송골 맺히며 손으로 땀방울들을 훔쳐내고 있었다.
“당신들을 어떻게 믿고 따라갈 수 있죠?”
“아..그런거였군요. 처음 만난 우리를 신뢰할 수 없는 거로군요. 하긴 그런 생각을 갖는 것도 당연하죠.”
온라인 슬롯료헤이는 온라인 슬롯를 설득할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TSP를 바라봤다. 온라인 슬롯는 점점 발바닥이 뜨거워지면서 화상으로 인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두 사람에 대한 확신을 갖고 싶었다. 이마에 땀이 무겁게 맺히는 TSP는 더는 참을 수 없었는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온라인 슬롯씨, 지금 몸이 뜨거워지고 있지 않으세요? 지면의 온도가 올라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곳의 지하에는 뜨거운 액체가 흐르고 있습니다. 태양 빛이 약해져서 대기의 온도가 낮아지면, 지면 아래의 열이 지면을 뚫고 나와 차가운 대기를 뜨거운 열기로 변화시키려는 성질이 생기게 됩니다. 앞으로 5~10분만 있으면 뜨거운 지하의 열기가 지상을 삼켜 버릴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용광로 앞에 아이스크림 신세가 되는 겁니다. 에덴의 벽 밖에 있었던 괴수새들이 이곳으로 들어오지 않은 이유도 바로 뜨거운 온도 때문입니다. 괴수새들은 인간들보다 뜨거움에 더 민감하거든요. 우리를 믿지 않으신다면, 나와 온라인 슬롯료헤이는 먼저 이곳을 벗어나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현명한 결정을 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TSP는 차분하고 건조한 말투로 설명을 한 뒤, 냉정하게 등을 돌렸다. 두 사람이 나쁜 사람인지 아닌지의 가능성은 50% 이지만, 대기 중으로 전해지는 열기는 100% 위험했다. 온라인 슬롯는 일단은 이곳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좋아요. 당신들을 따라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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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슬롯19 구역의 마을에 들어서자 20000년의 시대라고 하기에는 걸맞지 않은 19세기 초의 근대화 도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보도블록이나 아스팔트가 없는 자연 그대로의 흙 길은, 사람들이 걷고 자전거가 편리하게 다닐 수 있도록 평평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군데군데 작게 패인 곳도 있었다. 행인들 중 남자들은 바지와 셔츠를 입고 있었고, 여자들은 허리가 잘록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어린아이와 노인, 개나 동물들은 보이지 않았으며, 행인들의 나이는 20대에서 50대 사이였다. 에덴의 벽에서 만났던 재생자들처럼 흑인, 백인, 확인종의 다양한 인종들이 섞여 있어서 만국 박람회에 온 것 같기도 했다. 동물원에나 볼 수 있는 원숭이들은 두 발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사람들처럼 옷을 입고 걷고 있었다.
에덴의 벽안에서 만났던 박성호는, 에덴의 벽 너머에 유토피아가 있다고 말했다. 지금 오타가 보고 있는 온라인 슬롯19 마을은 낙원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거리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밝고 생동감 있는 표정으로 보아 평화와 안정감이 자리 잡은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점과 음식점을 비롯한 건물들의 간판, 도로의 표지들은 일본어로 표기되어 있었고 신문 가판대에 보관된 신문들도 모두 일본어였다. 신문의 앞면, 날짜는 20000년 12월 25일이라고 적혀 있었고, 헤드라인 기사가 칼라 사진과 함께 실려 온라인 슬롯.
‘제3차 재생자 120명(인간 100명, 원숭이 20명), 12월 25일 마을에 입성예정’
“온라인 슬롯씨, 이곳은 꼭 일본의 소도시 같지 않나요? 10년 전 TSP와 이 마을에 처음 들어왔을 때 깜짝 놀랐죠. 거리의 배치, 건물의 모양과 구조, 상점들의 일본어 간판, 사람들의 옷차림이 제가 살았던 1920년대 일본 도쿄의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했던 것 같았어요. 게다가 피부색에 관계없이 모두 일본어를 사용하다 보니, 다시 태어나서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착각도 들었습니다.”
온라인 슬롯료헤이는 온라인 슬롯의 대답을 은근히 기대했지만, 온라인 슬롯는 고개만 끄덕이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곳은 의식주 걱정 없이 살아도 되고, 재생자들 몸의 특성상 병도 노화도 없거든요. 그야말로 선택된 재생자들에게만 제공되는 특별한 혜택을 누리고 있는 샘이죠. 이곳에 온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하며 후손들에게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죠. 온라인 슬롯씨도 후손들의 깊은 관대함을 알게 될 겁니다.”
온라인 슬롯료혜이의 설명이 계속되는 동안, 거리의 사람들은 가운을 걸치고 운동화를 신은 온라인 슬롯를 곁눈질하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일부러 들으려고 한 건 아니지만, 온라인 슬롯의 귀에 사람들이 속닥거리는 내용이 들어왔다.
“오늘 우리 마을에 들어올 재생자 120 명중, 저 사람 혼자만 온 거라고? 나머지 사람들에게 무슨 사고라도 있었나 본데, 계획에 차질이 생겨서 TSP의 마음이 많이 아프겠어, 그런데 옆에 있는 온라인 슬롯료헤이는 TSP의 심정도 모르고 헤헤 웃고 있다니”
사람들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자, 가슴이 철렁거렸다. 사고의 원인은 온라인 슬롯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겉으로는 저렇게 웃고 헤헤거려도, 독불장군인 TSP에게 할 말은 제대로 하는 녀석이라고, 이곳에서 TSP를 견제할 수 있는 사람은 온라인 슬롯료헤이뿐이라고”
“그래, TSP가 많이 독단적으로 변하긴 했어. 꿈이 원대하고 야망이 큰 건 이해하겠는데, 왜 하필 시내산을 정복한다는 거야? 만약에 그곳에 위험이 도사리면 어떻게 하려고? 그냥 이렇게 여기서 사는 것도 좋은데, 굳이 모험을 하겠다고 하다니”
“그래, 나도 TSP의 계획이 무효화가 되면 좋겠어. 그렇게 되면 결국 온라인 슬롯료헤이의 뜻대로 되는 거겠지, 온라인 슬롯료헤이가 차기 위원장이 될 수도 있겠는걸”
온라인 슬롯는 행인들끼리 수근 거리는 내용에 대해서 100% 이해할 수 없었지만, 시내산 정복을 놓고, TSP와 온라인 슬롯료헤이의 생각이 다르며, 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갈등이 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 왔습니다.”
온라인 슬롯료헤이의 마을에 대한 설명과 행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중에, 어느새 파란색 지붕이 덮인 2층 건물에 도착했다. 건물 주위로 1m 높이의 흙벽이 둘러 쌓여 있고, 열린 문 사이로 마당이 들여다 보였는데, 마당 안에는 커다란 고목과 갈색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 한 대가 보였다. 그리고 대문의 문패 앞에는 한자로 ‘大田(온라인 슬롯)‘라고 새겨져 있었다.
“이곳이 온라인 슬롯 씨가 거주할 집입니다. 오늘은 집에서 푹 쉬고, 내일부터 공동 작업장으로 출근하면 됩니다. 공동작접장으로 오는 길을 모를 테니, 마을 주민중 한 명이 내일 아침 당신을 데리러 올 예정입니다. 아침 8시에는 집에서 나올 수 있도록 채비를 해주세요. 그럼 내일 공동작업장에서 봅시다."
"잠깐만요, 공동 작업장이 뭐 하는 곳이죠?”
"이곳 온라인 슬롯19 구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각자의 일을 하는 곳입니다.”
“무슨 일을 한다는 거죠?”
“지금 여기서 설명하긴 뭐 하고, 내일 출근하면 알게 될 겁니다. 그럼 오늘은 쉬세요. 나와 TSP도 할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온라인 슬롯료헤이와 TSP가 돌아가자, 온라인 슬롯는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 하루 만에 일어난 다이내믹한 일들로 마음이 어수선했다. 일단은 쉬는 게 먼저였다. 거실에 있는 긴 푹신푹신한 소파를 보자마자 몸을 뉘었고, 서서히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감기는 눈은 소파 앞의 낮은 테이블로 눈이 향했고, 테이블 위에는 직사각형의 기계가 놓여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스마트폰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스마트폰을 집어 얼굴에 대자, 잠금 화면이 해제되고 배경 화면에 한 남자의 사진이 보였다. 20대 시절의 젊은 온라인 슬롯였다. 사진이 담긴 어플을 누르자, 사진첩에 담긴 사진들이 나타나면서 ‘Silent night’의 기타 연주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사진첩에 나타난 인물들이 기억이 안 나고 있다.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난 탓일까? 오로지 기억이 나는 건 온라인 슬롯 자신의 얼굴뿐이다. 사진은 계속 팝업이 되었고, 80대가량의 한 남자의 사진이 유독 많이 보였다. 온라인 슬롯와 닮은 외모를 한 남자는 주름진 얼굴이지만 양 볼에는 눈에 띄는 보조개가 있었고, 하얀 백발이지만 머리숱이 풍성했다. 파마머리를 한 남자는 사진마다 항상 웃고 있었다. 온라인 슬롯와 가까운 사람인 거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 ‘Silent night’의 기타 연주가 끝나갈 무렵 온라인 슬롯도 자연스레 눈이 감겼다.